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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년에 …” 하는 생각이 몸 골병들게 한다





[커버스토리] 퇴직 그리고 질병



[일러스트=강일구]



고위 공무원을 지내고 3년 전 퇴임한 김모(64·서울 종로구)씨. 지난해 초 숨쉬기가 어려울 만큼 가슴이 답답해 내과를 찾았다. 검사 결과 협심증이었다. 그런 김씨에게 의사는 정신과 진료를 권했다. 그가 느끼는 증상이 좁아진 심장혈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퇴직 스트레스’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씨는 관직에서 물러나고 한숨이 늘었다. 밤낮없이 일에 좇기며 살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때마다 찾아오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집에만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한 가족이 ‘밖에 나가 친구도 만나고 뭐든지 배워보라’고 권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운전은 못하고, 10여 년 넘게 기사가 딸린 차만 타서 버스나 지하철 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김씨는 “자꾸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구였는데 이렇게 됐나’는 생각이 들어 우울하고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베이비붐세대 712만명 … 지난해부터 본격 은퇴 시작



퇴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 인구의 14.6%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 712만5000명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은퇴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은퇴 시점에 놓여 있는 50~64세는 2010년을 기준으로 총 896만5000명. 그 중 33%가 구직활동을 하는데도 취업이 되지 않거나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자다.



 문제는 은퇴가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공단 석상훈 연구원은 ‘은퇴가 건강 수준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해 10일 2011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국민노후보장패널에 포함된 전국 50세 이상 임금근로자 중에서 은퇴하지 않은 1886명과 은퇴한 317명에게 ‘스스로 느끼는 건강상태가 어떤지’ 2005~2009년 사이 2차례씩 물었다.



 조사결과, 은퇴자는 은퇴하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건강을 나쁘게 평가하고 있었다. 은퇴라는 ‘사건’은 주관적 건강상태를 10%정도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자발적 은퇴나 조기 은퇴가 더 악영향을 미쳤다. 은퇴자의 절반은 질병과 노화라는 건강상 이유로 일에서 물러났는데, 오히려 은퇴 후 건강이 22.3%나 나빠졌다고 답했다.



노화·소득감소·자녀 출가 … 위험요소 겹쳐 폭발하는 시기



퇴직하면 세가지 장벽에 부딪힌다. 은퇴를 맞는 5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은 신체적·정신적·경제적 위험요소가 겹치는 시기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신호철(대한스트레스학회장) 교수는 “과음·흡연·운동부족 등 젊었을 때부터 갖고 있던 나쁜 건강습관이 누적돼 위험수위를 넘나들다가 질병으로 드러나는 시기가 우연히 은퇴 시점과 맞아떨어진다”며 이를 “은퇴 후 위기(Post Retirement Crisis)”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이 나이엔 노화가 급속히 진행된다. 흰머리가 부쩍 늘고, 피부의 탄력과 생체기능이 떨어진다. 면역력도 저하돼 병이 잘 생긴다. 자녀가 출가하고 부모·배우자의 사망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때 일자리를 잃고 일선에서 물러나 가계소득이 줄어든다.



2007년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50~54세인 가구는 평균 연 소득이 4172만원인데 반해 60~64세 가구는 3413만원으로 적었다. 안팎으로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자살하는 이가 많다. 특히 남성 자살률은 50대를 기점으로 급증한다(2009 사망원인 통계).



“정말 하고 싶은 일 시작할 시기” 인식을



설상가상으로 은퇴 후 의료비 지출은 50세 이후 생애 최고로 높아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숙자 연구원은 2007년 국민건강보험 청구자료를 토대로 한 ‘생애의료비 분석연구’에서 “남녀 모두 65세 전후를 기점으로 전 생애의료비의 절반을 지출하는데, 외래비 지출은 50~54세에서 가장 많다”고 밝혔다. 남성은 전 생애의료비의 30.2%, 여성은 28.4%를 40~64세에 지출했다. 주로 암과 소화기·순환기·근골격계 질환이었다. 은퇴 전후의 건강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경제도 고공 비행하다 경착륙(Hard landing)하면 주가가 폭락하고 실업자가 급증한다. 연착륙(Soft landing)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 준비 없이 막연하게 은퇴를 맞는다. 이런 생애 전환기를 잘못 보내면 화석처럼 병상에 누워 노년을 맞기 쉽다. 가정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손실이 크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인 박상철(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는 “은퇴는 삶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아니라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준비하는 전환점”이라며 “규칙적인 생활과 활발한 사회 참여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최성재 교수는 “은퇴는 그동안 책임과 의무에 떠밀려 지속했던 일을 그만두고 진짜 원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노후 준비에 늦은 때란 없다. 시니어 전문 FM연구소 한주형 소장은 “최근엔 기업·금융기관·정부기관이 운영하는 은퇴 후 생애설계 서비스나 교육프로그램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은퇴 후 인생을 활력 넘치게 유지하려면 주기적인 검진을 통해 건강을 챙기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글=이주연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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