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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뿌리는 숙신, BC 2000년 이전 은나라 방계국가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김운회의 新고대사 : 단군을 넘어 고조선을 넘어

⑤고조선의 실체Ⅱ









1 갈석산의 전경. 『사기』에 “연나라는 발해와 갈석산의 틈새에 하나로 모이는 곳으로, 동북으로는 오랑캐와 접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오랑캐는 동이, 즉 고조선이다. 그래서 이 지역은 고조선 연구에서 중요하다. 2 대릉하 상류. 고조선 영역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패수인데 사서들을 종합하면 패수는 란하 또는 대릉하다. 대릉하의 발원지 가까이에 새롭게 떠오르는 최고의 인류문화 발상지인 홍산문화의 유적지가 있다. 3 고조선 영역에서 발견된 구멍무늬토기. [사진=권태균]





청나라 고증학자 호위(胡渭)는 우공추지(禹貢錐指)에서 “산동반도는 요(堯) 임금 때부터 조선의 땅”이라고 썼다. 사기에 “요(堯)임금은 의중을 시켜 우이(<5D4E>夷:또는 욱이[郁夷])의 땅, 즉 해 뜨는 곳(양곡·暘谷)에서 일출을 경건히 맞게 하였다(卷1 五帝本紀 堯)”고 하는데 주석에 “우이(<5D4E>夷)의 땅은 청주(靑州)”라고 했다. 청주는 현재의 산동반도다. 이 기록은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우이는 누구인가.



우공추지에 “동이 9족은 우이이고, 우이는 조선의 땅(四庫全書 經部 禹貢錐指 4卷)”이라고 했다. 나아가 사기에서 “양곡은 바로 해 뜨는 곳(日所出處名曰陽明之谷)”이라고 한다. 양곡을 매개로 산둥반도=양곡=조선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일단 이 기록이 고조선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시기, BC 2400년경의 기록이다.

그러나 고조선 연구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숙신(肅愼)이다. 고조선 그 자체이거나 고조선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숙신은 물길(勿吉)·말갈(靺鞨) 등으로 불리다 후일 여진족·만주족이 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조선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에는 “정시(240~248) 때 위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고구려왕 궁(동천왕)은 매구루(買溝婁)로 달아났고, 관구검은 현도태수 왕기를 파견해 추격하게 했는데 옥저를 1000여 리 지나 숙신씨의 남쪽 경계에까지 이르렀다(<6BCC>丘儉傳)”고 나온다. 옥저는 현재 함흥·신포 지역, 매구루는 현재 원산에 가까운 문천이다. 그러므로 숙신씨의 남방 한계선은 최소 금강산 일대 또는 강릉까지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 위나라에서는 한반도를 숙신의 나라 가운데 남부 지역으로 지칭한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건녕 3년(896) 왕융(王隆)이 군(郡)을 들어 궁예(弓裔)에게 귀부하자 궁예는 크게 기뻐하여 왕융을 금성태수로 삼았다. 그러자 왕융이 말하기를 ‘대왕께서 만약 조선·숙신·변한의 땅을 통치하는 왕이 되시려면 무엇보다 송악에 먼저 성을 쌓으시고 저의 맏이(고려 태조 왕건)를 그 주인으로 삼으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자 궁예가 이를 따라 왕건을 그 성주로 삼았다(太祖紀)”고 돼 있다. 이때 조선은 한반도라기보다 고조선의 옛땅, 숙신은 만주 또는 한반도 중부, 변한은 한반도 또는 남한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숙신은 고조선 중심부라는 느낌을 주는 말이다. 청나라 때 편찬된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의 머리글에는 금사세기(金史世紀)를 인용, “숙신은 한나라 때는 삼한(三韓)이라 했다”고 돼 있다.



이처럼 숙신과 조선(고조선)이 혼용되는 사례는 많다. 고조선 혹은 그 일부를 숙신으로 보거나 조선과 숙신을 상호연결된 독립 주체로 보는 식이다. 이런 혼용은 전설의 시대에서부터 청나라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숙신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사기에 나온다. “(우 임금은) 남으로는 북발, 서로는 융적 강족, 북으로는 산융과 발식신(發息愼) 등을 위무했다.”(卷1 五帝本紀 舜) 우(禹) 임금은 전설상의 인물로 정확한 시기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BC 2000년경 인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주석으로 후한 때 대학자 정현(鄭玄)은 “식신(息愼)은 숙신으로 동북방 오랑캐”라고 해설했다. 일주서(逸周書)에도 “직신(稷愼)은 숙신(王會解篇)”이라고 한다. 숙신은 중국 전설의 시대부터 존재해왔던 나라 또는 민족이며 ‘발식신=발숙신’임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발식신은 다른 용례를 찾기 어렵고, 가장 가까운 표현이 관자에 나오는 최초의 조선 언급인 발조선(“發朝鮮文皮”:管子 卷23)이어서 발조선은 발식신의 전음(轉音)으로 추정된다. 즉 ‘식신=숙신=직신 =조선’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숙신이나 조선은 어떤 민족명을 한자를 빌려 표현한 음차어라는 점과 고조선은 전설시대 때부터 중국민과 함께 존재했던 민족임을 알 수 있다.















죽서기년에는 “식신(또는 숙신)이 BC 1120년(무왕 15년)과 BC 1107년(성왕 9년)에 각각 사신을 주나라에 파견했다”고 한다. 이는 후한서에 “주 무왕이 은나라를 타도한 후 숙신 사신이 왔다”는 기사(卷115, 東夷傳)와 일치한다. 기록이 사실이라면 고조선은 은나라의 방계(형제국)로 사신을 파견할 정도로 정비된 형태의 국가였으며, 숙신이 고조선의 전신이라면 은나라의 북부에 있던 숙신이 은나라 유민과 결합해 고조선이 발전적으로 통합됐을 가능성이 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주나라 왕이 신하를 진나라에 보내어 한 말 가운데 “무왕이 은나라를 이긴 후(BC 1100여 년경) 숙신·연·박이 주나라의 북쪽의 땅이 되었다(昭公九年)”고 한다. 즉 주나라의 북쪽에 숙신·연·박이 연하여 있다는 말이고 연(燕)은 현재의 베이징 부근이다. 이 박은 고대 한국인을 지칭하는 발(發)의 전음(轉音)으로 추정되고, 중국에서도 고구려의 선민족인 맥족(貊族)으로 보고 있다(劉子敏古代高句麗同中原王朝的關係). 이것은 이후 순자의 “진(秦), 북으로 호맥(胡貊)이 접한다”, 사기의 “진(秦) 승상 이사(李斯)가 북으로 호맥(胡貊)을 쫓았다”는 기록과 대체로 일치한다(<5회 참고>). 나아가 박·숙신은 발신식(발조선)의 다른 표현으로도 추정된다. 결국 주(周) 초기 숙신 영역의 남방 경계가 고죽국에 근접한다.



사기(史記)에 “공자(BC551~BC479)가 진나라(현재의 카이펑 인근)에 머물 때 화살 맞은 매들이 떨어져 죽자 공자가 ‘이 화살은 숙신의 것’이라고 했다(卷47 孔子世家)”고 한다. 공자가 숙신의 화살을 정확히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화살 맞은 매가 멀리 날지 못했을 것이니, BC 6세기 숙신의 영역은 넓게 잡으면 현재 허베이(河北) 북부, 황하 이북이나 연나라 이북인데 이는 고조선 영역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 기록은 국어(國語:춘추시대 8국 역사서)에 바탕을 둔 것으로 전한 때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卷18 辨物篇), 한서(漢書)(卷27五行志) 등에도 전한다.



한나라 말기 양웅(揚雄·BC53~AD18)이 저술한 방언(方言)에는 “조선과 열수 사이”라는 말이 20회 이상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은 “연의 경계 밖으로 더러운 오랑캐인 조선과 열수의 사이(第1)” “무릇 초목이 사람을 상하게 하는 북연과 조선 사이를 일컬어 초망(가시덤불)의 땅이라 한다(第2)” “연나라의 동북쪽과 조선, 열수의 사이를 일컬어 목근(무궁화)의 땅이라고 한다(第5)” 등을 들 수 있다. 대체로 고조선을 낮춰 보는데 이런 경우는 중국을 괴롭힌 경우 많이 나타난다. 다루기 힘든 상대라는 의미다. 방언에 나타나는 기록들을 토대로 보면, 고조선은 연나라 북쪽에 연이어 있다. 이는 숙신과 고조선 영역이 일치함을 확인시킨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열수(列水)다. 지난 2000여 년간 한국에서는 고조선의 대동강 중심설이 일반적 견해였다. 고려 때 삼국유사, 조선의 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동사강목(東史綱目)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등을 거치면서 견고해졌다. 고조선의 수도는 현재의 평양, ‘패수(浿水)=청천강(또는 대동강)’ ‘열수(冽水)=대동강(또는 한강)’ 등으로 보고 있다.



중국 최고(最古)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BC3~4C로 추정)에는 “열수 동쪽에 열양(列陽)이 있고 그 동쪽에 조선이 있는데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위치해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卷12 海內北經)”고 한다. 같은 책에 “동해의 안,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고 이 나라를 조선이라고 부른다(卷18 海內經)”고 한다.



그런데 열수가 대동강이라면 이 기록은 틀렸다. 대동강(또는 한강) 동쪽에 열양이 있고 그 동쪽에 고조선이 있다면 고조선은 현재의 함흥이나 강릉이다. 고조선은 이 지역을 단 한번도 지배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열수는 대동강이 아니다.



사기 조선열전의 주석으로 실린 사기집해(史記集解)에는 “조선에는 습수(濕水)·열수(洌水)·산수(汕水) 등의 강이 있는데 이 세 강이 합해 열수가 된다. 아마도 낙랑이나 조선은 이 강의 이름을 따서 지었을 것이다(朝鮮列傳)”라고 한다. 그런데수경주에는 습여수(濕餘水)가 나오는데 이 강이 유수(濡水:란하의 다른 명칭)와 합류하는 강이라고 한다(濡水). 현대의 대표적 고대사가 리지린은 “이 습여수가 바로 습수”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열수는 란하다. 리지린은 “열수는 란하의 지류인 무열수(武列水)와 같은 강”이며 그 근거로 수경주에 “유수가 흐르는 도중 무열계(武列溪)를 지나면서 이곳을 무열수라 하고 무열수의 약칭이 열수”라고 한 기록과 열하지(熱河志)에 “란하가 과거 무열수”라 하고, 건륭황제의 저작인 열하고(熱河考)수경주에서도 “열하는 무열수”라고 하는 기록을 들었다. 즉 ‘란하=무열수=열하=열수’라는 것이다. 열하지의 기록에 따르면, 한나라 이전까지는 란하를 유수라 했고 그것을 난수(難水)라고 썼으며, 당나라 때 이르러 란하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열수는 란하 유역이나 대릉하 유역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산해경에 나오는 동해는 현재의 서해, 북해는 발해인 것이다.



숙신은 한(漢)나라 이전에는 허베이 지역과 남만주 지역에서 나타나고, 한 이후에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나타난다. 이는 고조선의 영역과도 일치한다. 고조선 기원을 연구했던 러시아의 L. R. 콘제비치도 한국의 역사적 명칭에서 “사료에 나타나는 고대 조선족과 숙신족의 인구 분포가 지리적으로 서로 일치하고, 숙신과 조선족의 종족 형성 과정이 유사하며 새를 공동 토템으로 가지고 있으며 두 민족 모두 백두산을 민족 발상지로 보고 있다”는 점 등을 토대로 조선이라는 말이 숙신에서 나왔다고 했다.



숙신과 조선이 동계(同系)라는 점을 대표적 선각인 신채호도 지적했다. 신채호는 “발숙신(發肅愼)이 발조선(發朝鮮) 대신 사용되었기 때문에 ‘조선=숙신’인데, 만주원류고에서 건륭대제가 숙신의 본음을 주신(珠申)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음도 결국은 주신이 된다”고 했다. 고대 문헌에서는 조선·숙신·식신 등이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어 ‘조선=숙신=식신’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숙신의 역사를 바탕으로 보면, 고조선은 전설의 시대부터 역사에 뚜렷이 존재해온 민족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고조선은 은나라의 방계국으로 주나라 초기에는 사신을 보낼 만큼 일정한 국체를 가졌으며, 황하 유역 이북을 지배하다 은나라 멸망 후 은의 유민과 결합해 보다 확대된 고조선을 건설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초기 고조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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