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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건 안 믿건, 인간은 모순덩어리

해마다 600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프랑스의 가톨릭 성지 루르드. 성녀 베르나데트가 18번이나 성모 발현을 체험했다는 이 거룩한 성지에 가면 정말 성모의 기적을 만날 수 있을까? 영화 ‘루르드’는 각자 희망과 믿음, 또는 호기심과 회의를 품고 성지 순례에 동참한 사람들이 목격한 놀라운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을 연출한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은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영화는 기적을 통해 신의 사랑과 위대함을 드러내는 ‘신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기적으로 드러난 신의 현존 앞에 보잘것없이 노출되는 인간 본성을 신랄하게 묘사한 ‘사람에 관한 영화’다.

17일 개봉한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영화 ‘루르드’

‘왜 하필 내가 아픈 것인지 화가 난다’는 전신마비환자 크리스틴. 믿음이 아닌 호기심으로 성지 순례에 동참하다 ‘우연히’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믿음이 일천한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 앞에 다른 환자와 보호자, 자원봉사자, 성직자와 호기심 어린 방관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사악한 인간 본성의 콜라주다. 내가 아닌 남에게 일어난 기적에 희망이 아닌 절망과 원망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 기적을 보겠다며 찾아온 성지에서 두 눈으로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으려 하는 이들의 모습은 인간에게 과연 사랑이 있었던가 의심하게 한다.

영화는 크리스틴의 치유 과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인 양 건조하게 흘러가지만, 자원봉사자 세실과 마리아를 크리스틴의 대립축에 놓은 설정은 꽤 자극적이다. 각각 금욕과 탐욕을 상징하는 세실과 마리아는 진심 어린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환자에 대한 우월감에서 동기 부여를 받는 속물들. 기적을 간구하는 환자에게 욕심을 버리고 운명을 받아들이라며 희망을 차단하거나 남성 봉사자를 사이에 두고 노골적인 질투를 드러내기도 한다. 속마음이야 어쨌든 봉사에 앞장서던 세실이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게 된 그날 밤 크리스틴은 두 발로 일어서고, 마리아에게 치근대던 남성 봉사자는 크리스틴이 회복되자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다.

그녀들의 대립된 운명의 드라마는 관객에게 신의 불공평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회복되자마자 감사보다 욕망을 드러내는 크리스틴을 보며 ‘기적이 왜 하필 믿음이 부족한 저 여자에게 일어났는지’ 우리를 대신해 신부에게 묻는 방관자들. 육신보다 영혼의 치유를 강조하던 신부도 기적을 믿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신은 자유롭다. 늘 해명을 찾는 우리에게 불가사의한 존재다. 누구는 피아노를 잘 치고 누구는 못 치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게 삶의 원칙”이라는 원론적인 대답으로 둘러댈 뿐.

신의 불공평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길 없는 방관자들이 집착하는 것은 기적의 ‘지속’ 여부다. 일시적인 현상일지 모르니 의학심사위원회를 통과해야 ‘기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며 애써 기적을 외면하려 한다. 신의 현존 앞에서도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과 희망을 보지 못하고, 신이 행한 기적을 인간의 방법으로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모순이다.

이 영화는 2009 바르샤바영화제 그랑프리, 베니스영화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한 외에 특이하게도 세계가톨릭언론연맹상인 ‘SIGNIS’, 합리주의자와 무신론자들의 연맹에서 수여하는 ‘브라이언상’을 동시에 받았다. ‘기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파헤친 이 영화가 종교인·비종교인 양자의 뜨거운 지지를 받는 이유는 뭘까? 신의 불공평성과 불가해함 앞에 종교인과 비종교인은 결국 같은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을 믿건 믿지 않건 인간은 양면성을 가진 모순덩어리 존재이며, 어리석은 인간은 어차피 신의 영역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영역에서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갈 뿐이라는.

마지막 작별파티에서 “안락한 방석, 흐르는 강물, 커튼 뒤로 흐르는 빗물이 행복이야. 샌드위치와 곁들이는 한 잔의 와인이 행복이야”라는 노래 ‘Felicita(행복)’를 따라 부르며 비로소 하나 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크리스틴이 춤을 추다 주저앉자 기적을 쉽사리 부인해 버리는 사람들. 휠체어를 사양하다 결국 타고 마는 그녀의 미래는 열린 결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기적이 지속되든 지속되지 않든, 아니 누군가에게 기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일상은 계속된다. 기적을 보겠다고 모였으나 보고도 믿지 않으려 하고 결국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겠다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 96분 동안 여과 없이 들여다본 우리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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