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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다윈의 정원’] 여러분, 소·돼지 행복도 생각합시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구제역 확산으로 우리 사회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고기 값이 오르고 유제품 구입이 불편해지고 있다는 느낌 정도일 테지만, 소독기를 통과해야만 하는 근교만 나가 봐도 살처분의 처절한 흔적들을 지날 수 있다.



 하지만 구제역에 걸린 소뿐 아니라 반경 500m 내에 존재하는 모든 소까지 살처분해야 하는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정부의 담당 관료와 전염학 전문가, 그리고 몇몇 수의학자의 말처럼 익혀 먹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왜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무고한’ 이웃 소들마저 처분해야 한단 말인가. 이번 파동으로 이렇게 ‘억울하게’ 동반 살처분된 소까지 합하면 무려 35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 되자 “구제역 안 걸린 소도 꼭 죽였어야 했나”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런 반론의 이유는 대개 살처분 비용이 비싸고, 많은 인력이 직·간접적으로 동원돼야 하며, 매몰지의 2차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사회 불안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분별한 살처분을 멈추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정부는 그동안 ‘구제역 청정 국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살처분 조치를 취했지만 사태가 대규모로 장기화하자 그 지위를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연간 육류 수출 규모가 밝혀졌는데, 고작 20억원 정도다. 그 금액을 계속 지켜내기 위해 350만 마리의 소를 생매장시켰단 말인가? 경제학적으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셈법이다. 어쨌든 구제역 대책에 관한 작금의 모든 논란은 인간 중심적인 틀 내에서 경제성 위주로 진행돼 왔다. 혹시 ‘소의 시각’에선 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을까?



 10년 전쯤 침팬지 연구의 대모인 제인 구달 선생을 한국에서 모시고 다닌 일이 있었다. 채식주의자란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먹을거리를 챙겨드리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식사 자리에서 넌지시 여쭤봤다. “왜 채식을 하세요?” 구달 선생은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응용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책들을 읽고 난 후에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던 말이 한동안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우리는 과학의 진보나 인간의 행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동물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것은 없다. 다르게 접근하고 대안을 찾아보면 인간과 동물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와 동물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들이다.”



 신제품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화장품 회사들은 토끼 눈에 3000번이나 마스카라를 바른다. 물론 그들은 큰 고통 속에서 눈이 먼다. 화장품 성능 테스트 때문에 이런 식으로 희생당하는 동물이 매년 15만 마리다. 이런 잔인한 동물 실험의 실상이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자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 실험으로 화장품을 개발하는 회사들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급기야 유럽연합은 동물 실험을 전면 금지하는 화장품 제조 법안을 시행하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조치들이 있고 나서야 회사들이 동물 실험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테스트 방법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구달 선생이 말한 ‘대안적 접근’이다.



 감정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가 최근 인간의 ‘공감 능력’을 새삼 주목하고 있다. 남의 고통에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이웃의 슬픔에 같이 우는 능력 말이다. 이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장 노릇을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문제는 이 공감 능력이 가족과 이웃, 그리고 남을 넘긴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개 호모 사피엔스하고만 공감하는 ‘종(種)차별주의자’들이라는 얘기다.



 억울하게 살처분장에 끌려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소들이 오늘도 우리를 바라본다. 인간은 애써 눈을 피하지만 ‘꼭 이래야만 하는가’라는 그들의 절규는 이미 우리의 심장을 후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행복 증진이 고통을 줄이고, 즐거움을 늘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전 지구적인 행복’을 위해 우리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고통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모든 관련 시스템을 새롭게 짜보자. 이것이 최고의 공감 능력을 지닌 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품격 있고 창의적인 행동이 아닐까.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진화학을 가르친다. 동물과 인간, 신, 기계 등 다양한 분야의 넘나들기를 즐겨 스스로를 ‘앤돌로지스트(and+ologist:학자)’ 또는 ‘과學者’로 부른다. KAIST를 나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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