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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왕의 남자’ ‘평양성’…역사 파고드는 영화감독 이준익





“계백 장군도 모르는 학생 많다”





“일본의 ‘세키가하라 전투’를 아나? 전국 시대를 종결한 유명한 싸움이다. 많은 한국 중·고생도 잘 안다. 일본 만화에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이준익(52)은 “그러나 우리의 계백 장군이며, 심지어 베트남 전쟁을 잘 모르는 학생이 많다”고 했다.



그의 카메라 앵글은 지난 8년간 한국사를 조준했다. 4편의 사극을 만들었다. 폭군 연산군과 광대의 이야기 ‘왕의 남자’(2005)는 사극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모았다. 지난달 말 ‘평양성’이 개봉됐다. 고구려와 신라·당나라 연합군의 668년 전투를 다뤘다. 백제 멸망을 그린 ‘황산벌’(2003) 후속작이다.



“미국 역사가 230여 년쯤 되죠. 우리는요? 반만년이잖아요. 그런데 미국 역사 교과서가 더 두껍다니 참. 미국은 역사가 필수과목이고 우리는 선택이고···.”



그는 “그런 게 자국 역사를 멸시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김준술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평양성’이 개봉됐는데 반응은 어떤가.



 “사실 지리멸렬이다. 140만 명 넘은 정도다. 사극은 제작비가 많다. 250만 명 넘어야 손익분기점이다. 안 될 것 같다. 이번에 실패하면 은퇴한다고 선언했는데 이것 참···.”



●역사적 소재에 천착하는 이유가 뭔가.



 “한국은 반세기 동안 쾌속 성장했다. 서양의 200년 노력을 압축했다. 이젠 문화적 가치를 생산할 때다. 그걸 못하면 국가 수준의 성장 둔화에 직면한다. 문화의 텃밭은 인문학이다. 그 기초는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이다. 거기서 뿌리는 역사다. 우리가 서양 역사물에 많이 노출되면서 한국사를 망각할 때가 많다. 영화도 1980년대 이후 사극이 거의 없었다.”











●‘평양성’에선 신라가 나·당 연합의 이면에서 되레 고구려를 도와 전쟁을 지연시킨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역사적 상상력은 어디서 얻나.



 “사극이 역사 고증(考證)을 하자는 건 아니다. 동시대의 특정 관객과 상업행위를 하는 거다. 따라서 역사물에서 현재성을 어떻게 은유로 풀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시의성이 결부돼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평양성’에도 남북 대립의 현실이 녹아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이념 분쟁의 잔재가 세계적으로 딱 한 곳, 대한민국에 잔존한다. 말하자면 여기다 똥을 싸놓은 거다. 역사는 아이로니컬하다. 신라·고구려 대립이 지금의 분단 양상을 떠올리게 하지 않나.”



●장수(將帥)들보다 다양한 사병들을 주인공처럼 그렸다.



 “메시지적 주인공은 ‘거시기’다. 백제가 망하고 신라 군이 된 뒤 고구려 군에 잡힌 병사다. 사실은 영화 속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인간은 집단 생활을 한다. 집단이 생기면 서열이, 뒤이어 신분이 주어진다. 하지만 현대사회란 게 봉건시대 같은 서열과 신분을 제거하는 과정 아닌가. 그런 걸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위인을 조롱했다는 비판이 있다. ‘황산벌’도 그렇고.



 “개인 하나 하나가 존재감을 인정받는, 모두가 영웅인 그런 역사관을 그리고 싶었다. 사실 장군들도 일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캐릭터로 그렸다. ‘평양성’에서 ‘잔머리 캐릭터’로 묘사한 김유신의 리더십을 보자. 그는 고구려를 친 뒤 신라까지 차지하려는 당나라의 본심을 너무 잘 안다. 그런 상황에서 본진을 끝까지 평양성으로 보내지 않는다고 설정했다. 이런 게 한반도 강소국으로서 가져야 할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인공이 많아 구성이 산만하다는 시각이 있다.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고, 좋게 말하면 풍부한 것이다. 보는 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인간은 ‘사고의 관성’이 있다. 기존 할리우드 영화가 스토리를 전개하는 내러티브와 다르면 어색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많은 인물을 배치해 그들의 상호 관계성 안에서 얘기를 끌어내는 연출을 지향한다.”



●젊은이의 역사관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황산벌’ 개봉할 때 설문조사를 했다. 대학생들이 계백 장군을 절반 넘게 모르더라. 영화 ‘님은 먼 곳에’를 찍은 뒤에도 알아봤더니 중·고생들이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이 파견된 걸 잘 모르는 사례가 태반이어서 깜짝 놀랐다. 교과서에 베트남전이 몇 줄 나올 순 있겠지만, 암기식 정보는 시간이 갈수록 잊는 법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재미있게 가르치는 방법은 .



 “우리는 정사(正史)를 야사(野史)와 구분 지으려는 의식이 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생활사로 역사를 다루면 어떤가. 재발견할 수 있는 가치가 엄청 많다. 우리 도자기를 봐라. 세계 최고다. 그걸 잘 만든 도공은 정말 영웅인 거다. 요즘 유럽에서도 온돌을 깐다고 한다. 인류 문명에서 유일하게 우리 땅에서 시작된 문화다. 이런 걸 개발하고 발전시킨 사람도 영웅 아닌가. 역사 교육도 이렇게 생활사적인 걸 가미하면 더 재미있게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않겠나.”



●학교 다닐 때 역사 공부깨나 했을 것 같다.



 “공부 못했다. 사실 젊은이 비난할 자격이 없다. 사지선다형 한국사 교육 때문에 나도 역사관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왕의 남자’를 보라. 1000만 관객이 든 건,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이 말하는 ‘집단 무의식’의 발로라고 본다. 우리 것에 대해 수천 년간 각인된 문화적 유전자가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는 소리다.”



●j 는 지난해 추억의 만화 ‘라이파이’의 김산호 화백을 인터뷰했다. 단군을 포함한 ‘상고사(上古史)’ 연구에 천착하고 있더라. 영화로도 이런 소재를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영화가 한국사로 도달할 수 있는 종국적 지점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판타지다. 우리도 풍부한 이야기 보따리가 있다. 고조선이 그렇다. 그러나 세계인에게 통하는 걸작이 나오려면 ‘사극의 계단’을 쌓아야 한다. 켈트족 신화가 그냥 반지의 제왕으로 탄생한 게 아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글래디에이터’ 같은 수많은 내러티브를 발판 삼아 거기까지 간 거다. 미래 성장동력이 콘텐트에 있다고 하면서 역사에 대한 충분한 학습과 시행착오가 없다.”



●좋아하는 배우상은.



 “모든 배우는 쓰여질 몫이 있다. 시나리오 쓸 때 설정한 캐릭터가 있지만, 현장에선 배우 개성에 맞추려 한다. 그가 가진 실제 ‘영혼의 캐릭터’와 교배를 하는 것이다.”



●단골 출연 배우 정진영씨가 배역을 맡길 때마다 반대를 했다는데.



 “감독은 현장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한다. 누군가는 견제를 해야 된다. 모두 가만 있으면 내가 먼저 그걸 부추긴다. 대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려면 감독의 자의식만으로 영화를 만들면 안 된다.”



●아쉬운 영화는 뭔가.



 “관객에게 사랑받는 영화는 아쉬움도 없다. 관객 적게 든 작품이 가장 안타깝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이 그랬다.”



●‘1000만 감독’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



 “굉장히 부담된다. 관객들은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같은 영화를 또 찍길 바란다. 감독 입장에선 비슷한 걸 하면 매너리즘에 다름 아니다. 더 진화된 것으로,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준익 감독의 작품들

1993~2011




이준익 감독의 데뷔작은 어린이물 ‘키드캅’(1993)이었다. “아들 데리고 영화 보는데 매일 할리우드 것만 보게 됐다. 내가 학생일 때도 그랬는데. 배신감이 밀려왔다. 무작정 감독을 해보겠다고 매달렸다.” 그러나 흥행엔 실패했다. 그는 이후 10년간 영화 수입과 제작에 나섰다. 황산벌 시나리오를 만들어 감독을 섭외하는데 거절만 당해 다시 감독으로 나섰고 ‘왕의 남자’로 1000만 돌파 신화를 썼다. 그에게 “675년 나·당 전투를 그린 ‘매소성’을 언제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은퇴 발언을 의식한 듯 “못 찍을 가능성이 크다”는 답이 나왔다. “내 영화사에서 유실된 역사지 뭐, 하하.”



칵테일 >>

좌우명은 ‘자뻑 아니면 자폭’

스스로 매긴 인생 별점은 ★★☆




이준익 감독의 좌우명은 ‘자뻑 아니면 자폭’이다. 최선을 다해 매달린 일에 스스로 소중함을 부여한다는 뜻에서 자뻑이다. 그러나 “영화감독으로 흥행에 실패하면 자폭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평양성’도 자폭이 될 것 같은데···.”



 ‘별점’으로 평가받는 감독의 인생. 내친김에 “오십 인생에 별점을 매겨 달라”고 요청했다. 이준익 감독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두 개 반.” 그는 “반만 하면 잘한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선행을 하려 해도 거기에 가려진 악행이 있는 법이다. 사람이 인생을 미화하는 것처럼 비겁한 일이 없다”고 했다.



 별점에 인색한 그에게 이번엔 스스로에게 ‘벌점’을 줘보라고 주문했다. “많이 매겨야 될 것 같다. 선배에게 배운 게 많은데 돌려주지 못하고, 후배에게 도움받고 갚지 못했어. 또 친구들에게 응원 받았지만 보답하지 못한 죄가 있다.”



 그는 “조감도(鳥瞰圖)처럼, 새의 눈으로 폭넓게 세상을 보며 살고 싶다”고도 했다. “우린 천재 시인 이상이 말한 것처럼 온전하지 못한 까마귀 눈, 오감도(烏瞰圖)로 살 때가 많아.” 이 감독은 “역사라는 제3의 시선에 소홀한 것도 눈높이가 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집스럽게 사극을 찍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 바이크 몰고 드럼 치고 …

“저는 낭만공장 공장장입니다”




이준익 감독을 만난 건 지난 8일 서울 홍익대 앞의 작은 건물 4층에서였다.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지인들과 영화 얘기도 하고, 연주도 하는. 인터뷰 중 휴대전화가 연신 울렸다. “흥행 잘 되느냐”는 안부였다. 그런데 벨소리가 특이했다. ‘부르르릉.’ 모터사이클 배기음이었다.



●바이크를 좋아하나.



 “정말 좋아한다. 7년 전부터 탔다. 옛날부터 몰고 싶었다. 어느 순간 결심을 했다. 50㏄ 스쿠터로 시작해 지금은 BMW 850㏄를 탄다. 장볼 때도 스쿠터 타고, 바람 쐬고 싶을 땐 지인들과 경기도 양평 쪽으로 간다. 봄 되면 지리산에 갈 작정이다. 바이크는 도시의 마차다.”



●창가에 놓인 드럼도 직접 치나.



 “최근 학원 다니면서 배운다. 밴드에 끼이고 싶다. 언젠가는 무대에 서고 싶다. 내가 만든 직장인 밴드 영화 ‘즐거운 인생’처럼 말이다. 그룹 ‘노 브레인’의 노래를 좋아한다. 파이팅이 좋다, 그 파이팅이.”



 역사 얘기로 진지한 분위기가 바이크와 노래 얘기로 반전됐다. 그때 창문에 쓰인 ‘낭만공장’ 글귀로 화두가 옮아갔다.



●무슨 뜻인가.



 “내가 낭만공장 공장장이다. 여긴 함께 상상하고 공상하는 그런 장소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 성공하려고 먼 길을 떠난 자가 흥망성쇠를 다 겪고 돌아오니 새로운 내가 돼 있다, 뭐 이런 것? 사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낭만의 흔적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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