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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성형·교정 … 죽어가는 신발 살리는 ‘신’의 손

이민용 슈 클리닉 대표가 서울 성수동 작업장에서 운동화 수선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람의 병을 고치듯 신발을 살려내는 자부심으로 일한다는 이 대표는 “우리병원에는 의사가 네 명, 간호사가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봄철 등산 시즌이 시작되면 등산화 맡기는 손님이 크게 늘어난다고 한다. 조용철 기자
여기 별난 의사가 있다. ‘슈 클리닉’ 대표 이민용(52)씨다. 그가 고치는 것은 사람의 질병이 아니라 신발이다. 이 대표는 “아픈 몸을 치료한다는 생각, 신발이 내 신체의 일부분이라는 마음으로 고친다. 그래서 클리닉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소개했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찾아온 등산화·운동화를 그는 척척 고쳐내 필드로 돌려보낸다. 슈 클리닉은 아웃도어 브랜드 K2·블랙야크·LS네트웍스(프로스펙스)의 공식 수선업체이기도 하다.

신발병원 ‘슈 클리닉’ 이민용 대표

최근에는 산악인 오은선(45) 대장의 등산화가 그의 치료를 받고 다시 태어났다. 오 대장은 새 등산화를 테스트했는데 기존의 것보다 미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전문산악인은 험준한 산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접지력이나 마찰력의 작은 차이까지 신경 써야 한다. 갑피(신발의 겉을 싼 재질) 등 다른 부분은 새것이 더 훌륭했다. 이 대표는 오 대장의 기존 등산화에서 창을 떼어내 새 등산화에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창만 갈면 새 신발 되는데 왜 버립니까”
서울 성수동에 있는 슈 클리닉의 문을 여니 접착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대표에게 신발이 왜 아프게 되는지부터 물었다.

“가장 큰 이유는 노화다. 신발의 창이나 갑피 등이 물에 젖으면 가수분해 현상이 일어난다. 철이 산소를 만나 녹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무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변하는 황변화 현상이 일어난다. 보기가 좋지 않아 기능이 멀쩡함에도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물리적 마찰에 의한 손상이다. 갑피가 긁히거나 찢어지는 것이다. 이는 고객의 책임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제조사에서는 수선을 잘 해주지 않는다.”

이 대표는 수술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줬다. 우선 ‘환자’가 들어오면 상태를 진단한다. 그리고 수술 중 신발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발에 끼우는 라스트(last·발 모형)를 선택한다. 같은 신발이라도 주인의 발 모양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슈 클리닉에는 사이즈와 모양이 다른 수십 종의 라스트가 있다. 열을 가해 갑피와 창을 분리하고, 신발에 남아 있는 이물질을 갈아내 제거하는 그라인딩 과정을 거친다. 새 창을 붙이기 위해 밑그림을 그린 뒤 본드를 발라 창을 접착한다. 압착기를 사용해 접착을 완료하고 라스트를 제거하면 수술이 끝난다.
기자가 5년 전쯤 15만원을 주고 산 등산화를 내밀었다. 창이 닳아 물가를 밟으면 양말이 흠뻑 젖었다. 뒤꿈치 쪽은 동그랗게 해졌다. 그는 “일주일이면 되겠다”고 약속했다. 가격은 창갈이에 3만5000원, 뒤꿈치 수선에 2만5000원이라고 했다. 새 신발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민스러운 표정을 눈치챈 이 대표가 신발 두 켤레를 가지고 왔다. “이쪽에 있는 신발이 가져오신 것과 상태가 비슷하죠? 그게 이렇게 고쳐집니다.” 그가 두 번째 내민 신발은 새것처럼 보였다.

“버려지는 신발, 환경에도 악영향”
그가 ‘수술대’라고 부르는 작업대에서 설명을 이었다. “갑피가 아무리 멀쩡해도 창이 닳으면 신을 수 없어요. 반대로 생각하면 창만 교체하면 새 신이 된다는 뜻이죠.”

이 대표는 2년 전 이 생각을 사업으로 구현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유명 제화회사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뒤로 스포츠용품·등산용품 회사에서 유통·기획·영업 등을 맡았다. 신발만 생각하며 26년을 보내며 느낀 점이 있었다. ‘등산화는 대부분 고가다. 애프터서비스를 해 주기는 하지만 번거롭고 제약이 많다. 조금만 고쳐주면 더 신을 수 있는 신발이 버려지는 건 고객에게는 물론 환경에도 분명 나쁜 일이다.’ 그는 압착기·가열기 등 생산 공정에 쓰이는 설비를 구입해 신발을 고치기 시작했다.

함께할 숙련의도 불러 모았다. 수선은 크게 창갈이·접착·봉제로 나뉜다. 슈 클리닉에 있는 4명의 의사는 모두 멀티플레이어이자 10년 이상 경력을 지닌 전문가다. 세 분야를 모두 잘해낸다. 신발마다 수선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경험과 아이디어가 중요한데 이들은 오랜 시술로 체득한 노하우가 있다. 임복용(67)씨는 20대부터 인생 3분의 2를 신발 수선에 바친 장인이다. 이들을 거치면 신발의 수명을 2~3년 연장할 수 있다.

국내 등산화 시장은 연간 5000억~6000억원 규모인데 수선되는 등산화는 1년에 20만 족 정도라고 한다. 유통되는 등산화의 5% 미만만 다시 신게 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지는 셈이다.
등산화보다 시장 규모가 더 큰 운동화는 수선율이 제로에 가깝다. 버려지는 신발 대부분이 5만원 정도만 들이면 새것처럼 다시 신을 수 있으니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슈 클리닉을 찾는 환자는 날로 늘고 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하루 10켤레 정도를 주문받는 데 그쳤지만 지난달에는 70켤레로 늘었다. 등산객이 늘어나는 봄에는 주문량이 50%가량 올라간다. 지금은 등산화와 운동화의 비율이 반반이지만 운동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아들 해진(22)씨까지 일손을 돕고 있다. 해진씨는 국내 유일의 신발 관련 학과인 동서대 신발지식공학과 4학년이다. 인체공학·원가분석 등 체계적으로 신발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지만 최근 국내 신발산업이 위축되면서 지원자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해진씨는 “패션은 신발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같은 신발 장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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