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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미생물의 동거

오래전 미생물학과에 처음 입학했을 때 선배들이 후배들을 모아놓고 미생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늘 했던 이야기가 있다. 우리 몸에는 몸을 구성하는 사람의 세포보다 열 배나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미생물들의 삶을 보존하기 위한 세균 배양기라는 것이다. 논리적인 비약이 심한 얘기지만 우리가 이렇게 많은 미생물을 우리 몸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다.

몇 년 전 인간의 유전자 염기 배열의 해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인간이 가진 유전자 숫자가 훨씬 적었다는 것이다. 생명 유지와 지적인 기능들을 위해 인간 유전자가 적어도 10만 개는 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2만 개밖에 안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 맡은 수많은 기능을 단지 2만 개의 유전자로 어떻게 감당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 몸속에서 공생하는 미생물들의 역할이다. 인간의 몸에는 1000종이 넘는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는데, 이것들이 가진 유전자 숫자는 300만 개를 훨씬 넘는다. 인간 유전자 숫자의 무려 150배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미생물들이 외부환경에서 자랄 때는 그 환경에 잘 적응하는 우월한 한 종류의 미생물이 한 군집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지배적으로 자라간다. 하지만 사람의 장내에서는 어떠한 한 종류의 세균도 전체 군집의 4%를 넘지 않는다. 다시 설명하자면 수백 종의 미생물이 인간의 세포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미생물들은 우리 몸에 해를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역할들을 감당한다. 음식의 소화를 위해 필요한 효소들을 분비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의 감염을 막으며 면역을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 때문에 이런 세균들이 죽을 경우 오히려 우리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다른 병원균의 감염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해 미 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된 연구에서 정상적인 분만을 통해 태어난 아기와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난 아기의 장내 세균 분포가 전혀 다르다는 게 밝혀졌다. 정상 분만 과정에서 신생아가 질 내 세균에 노출되면서 세균 분포가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런 세균 집단들이 아기들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인간 지놈 프로젝트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가장 큰 연구과제 중 하나는 인간의 장 내부와 피부·구강·후두부, 그리고 여성의 생식기관 등에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들의 유전자 염기 서열을 해독하는 인간 미생물군집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다. 이미 500여 종의 미생물 유전자 염기 배열 해독을 마쳤고, 약 2500종의 새로운 종을 해독할 계획이다. 우리 몸에 살고 있는 엄청난 숫자의 미생물들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인간의 유전자 정보만으로는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생리 현상과 질병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작고한 노벨상 수상자 조슈아 레더버그는 10년 전에 “우리는 아군, 저들은 적군”이라는 개념의 ‘미생물과의 전쟁’에 종말을 선언했다. 수천 종의 미생물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 불필요하거나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그 중요한 역할들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은 크든 작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편도훈 경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바이러스학과 종양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미국 암연구 학회와 바이러스학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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