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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아들과 목욕하기

아들의 알몸은 건장했다. 연천에서 포병으로 복무하는 그는 가슴팍도 더 넓어지고 팔뚝이며 장딴지도 튼실해진 것 같다. 건장한 아들의 몸을 보는 아비의 마음이란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나는 목욕탕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잘난 놈이 내 아들입니다”라고 광고라도 하듯 그의 곁에 딱 붙어 다닌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붙어 다니긴 해도 아들의 몸과 내 몸은 유전적 유사성이 별로 없다. 격세유전이랄까? 그의 몸매는 오히려 자기 할아버지, 즉 내 아버지의 몸매를 더 많이 닮았다. 내 젊은 아버지 같은 아들이 샤워를 마치고 온탕에 들어간다. 나는 얼른 따라 들어가 아들 옆에 앉는다. 뜨겁다.

어릴 때부터 나는 대중목욕탕이 싫었다. 우선 숨이 막히는 게 싫었다. 목욕탕 특유의 그 빨래 삶을 때 나는 냄새 같은 것도 비위에 거슬렸다. 나중에 손바닥이 불어 우툴두툴해지는 것도 끔찍했다. 무엇보다 싫은 것은 목욕탕에 아버지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엄한 분이라 철없는 자식이 냉탕에서 노닥거린다든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걸 싫어했다. 꼼짝없이 옆에서 열심히 몸을 씻어야 하고 나중에는 아버지 등을 밀어드려야 했다. 물론 내 등은 아버지가 밀어주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아팠다. 아프다고 말씀 드려도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놈의 어리광 정도로 여기고 이태리 타올로 힘껏 등을 미셨다. 그때 나는 ‘살갗이 벗겨지는 아픔’이란 게 얼마나 사실적인 표현인지 실감했다.

당시 목욕탕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교회 십자가보다 높았다. 그것은 하나의 성소였다. 매주 일요일이면 아버지는 우리 형제를 데리고 성소를 찾았다. 세례를 받듯 온탕에 들어갔고, 고해라도 하듯 “내 때요, 검은 때요, 내 큰 검은 때요”하면서 때를 밀었다. 그 성소의 신자들인 어른들이 모두 알몸으로 앉아서 혹은 서서 온갖 기묘한 자세를 취하며 이태리 타올로 자신의 몸을 미는 광경은 실로 엄숙하고 장엄하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신자라기보다는 고행 중인 수도자 같았다. 아버지의 몸은 찰과상을 입은 것처럼 빨갰다. 내 등도 빨갰지만 나온 때를 볼 때면 그것은 어린 내가 지은 죄 같았다. 목욕을 하고 나면 며칠 동안 피부가 쓰라리고 따가웠지만 그건 정화되고 구원 받은 어린 양이 당연히 치러야 할 벌 같았다.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는 일도 내겐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나는 내 한 몸 씻는 것도 숨차고 어지러운데 도무지 아버지가 원하는 강도로는 밀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등을 밀면서 그때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낸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인 표현인지 깨달았다.목욕을 마친 후엔 보상이 주어졌다. 마치 영성체를 하듯 삶은 계란과 우유를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게서 벗겨져 나간 살갗이고 내가 냈던 젖 먹던 힘의 젖 같았다.

자신의 몸을 다 씻은 아들이 내게 등을 내민다. 나는 정성을 다해 아들의 등을 밀어준다. 잘 불려진 아들의 몸에서는 풍만하고 탐스러운 때가 뭉게뭉게 밀려나온다. 아들의 등을 다 민 다음, 나는 목욕탕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어라 큰소리로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 이제 내 등 한 번 밀어 봐.” 나는 내 등을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맡긴다. 역시 격세유전이다. 자기 할아버지를 닮은 아들은 내 살갗을 아예 벗겨낼 셈인지 등을 박박 민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와『대한민국 유부남헌장』『남편생태보고서』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일하고 있다. 웃음과 눈물이 꼬물꼬물 묻어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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