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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무대 위에 아롱진 인간의 고뇌와 절망들

재단법인 국립극단(예술감독 손진책)의 첫 공연 ‘오이디푸스’(연출 한태숙·1월 20일~2월 13일 서울 명동예술극장)가 끝나간다. 국립극단은 오랫동안 ‘한국적인’ 공연을 추구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쩐지 고루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남산 숲속에서 나랏돈으로 그들만을 위한 공연을 하는가 싶었고, 연극계의 이슈에서 언제나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그랬기에 그 국립극단이 60년 묵은 전통을 해체하고 서울역 앞 서계동에 ‘실험용 극장’ 냄새 물씬 풍기는 장소로 옮겨갔을 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첫 레퍼토리가 신선할 것이라는 기대는 했어도 덤으로 만족감까지 얻어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오이디푸스’라는 지지리 막장 그리스 비극에서.

재단법인 국립극단 창단 공연 ‘오이디푸스’, 13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오이디푸스는 활자로 읽는 게 낫지 눈으로 보기에는 불편한 작품이다. 재미있는 해석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고 하면 할수록, 시대를 어디로 옮기려 들면 들수록 더욱 유치해지는 그런 난감함이 있다.무대는 급경사다. 배우들이 힘들다. 무대 왼쪽은 약 10m가량 높이의 절벽이다. 벽면에는 70여 개의 철봉이 박혀 있다. 시민 또는 군중의 역할을 맡은 코러스 배우들은 이 철봉에 매달려 왔다 갔다 하며 연기를 한다. 이처럼 연출 의도와 잘 결합된 무대 디자인만으로도 만족도가 올라간다.

엄숙하게 한목소리로 말하는 사제 같은 코러스들은 이 작품 속에 없다. 대신에 역병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이 있을 뿐이다.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을 열고 닫는 ‘시민’들은 사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오이디푸스 집안은 피가 저지른 원죄라도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행동의 대가로 역병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궁중의 막장 드라마를 마치 TV 보듯 객관화해서 대하는 마지막 장면은 을씨년스러운 오늘날의 풍경과 고스란히 오버랩된다. 그들의 역할은 그저 고통받는 것, 고통받고 있다고 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그들의 고통을 딛고 마지막에 웃는 것은 새로운 왕 크레온이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조소는 하나도 달라질 것 없는 그들의 인생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이상직이 연기하는 오이디푸스는 첫 등장부터 매우 인상적이다. 자기애의 화신으로 유명한 이 주인공은 마치 어디서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송아지처럼 순진해 보이는 눈망울로 나라를 역병으로부터 구하겠다며 괴로워한다. 그는 아내이자 어머니인 요카스타의 비명과도 같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캐나간다. 관객은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그의 종말을 기다리기보다 ‘엄마 말 좀 듣지’ 하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지막에 무대 가장자리에 매달려 웅크리는 그는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태아로 돌아가고 싶은 순수한 절망 상태에 이른다.

정동환이 연기하는 크레온의 음흉한 연기도 일품이다. 그가 오이디푸스 앞에서 결백을 주장할 때는 뱀의 혀처럼 한쪽으로 치켜올라간 그의 머리 모양이 아니라면 관객들도 깜박 속을 판이다. 절제된 그의 야망은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를 연상케 하는 케이프 달린 코트를 통해 차가운 캐릭터로 완성된다. 그가 새로운 왕으로서의 연설을 하며 손을 치켜들고 성벽 안으로 사라질 때, 그의 그림자까지도 야비하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뭐니뭐니해도 서이숙이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어머니이며 전 남편을 죽인 살인자가 자신의 아들이자 남편인 여자, 자신의 손녀이자 딸인 자식을 낳은 여자인 요카스타를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오이디푸스에서 욕망의 대상이었던 요카스타가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과 고뇌를 드러내며 불안과 지극히 짧은 안심, 그리고 극도의 절망 상태로 치닫는 모습은 근친상간이나 근친살인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넘어서는 연민을 자아낸다.

음악(원일), 오브제 연출(이영란), 안무(이경은) 등은 어색하지도 과하지도 않으면서 확실한 개성을 묵묵히 보여준다. 프로덕션 전체가 마치 하나의 호흡으로 숨을 쉬는 듯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국립극단의 재출범 첫 공연이 준 아쉬움이라면 레퍼토리 체계를 받쳐줄 하우스 극장의 부재다. 이 작품을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 때문에 외국의 유명 국립극단과 수평적인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대감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립극단의 다음 작품이 올려질 봄이 기다려진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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