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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추성훈 “난 한국과 일본의 한가운데 서 있다”





국적은 일본, 핏줄은 한국 … ‘재일 경계인’ 고뇌를 말하다

사진 = 김한준 / 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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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아시안컵 축구 결승전에서 일본에 우승을 안겨준 한국계 이충성(李忠成·일본명 리 다다나리·26) 선수는 우리 사회에서 잠시 잊혀졌던 불편한 진실을 다시 끄집어냈다. 해외 동포, 특히 재일동포 3, 4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문제다. 이 시대착오적 병폐가 21세기를 사는 이 땅에서 여전히 건재하고 있던 것이다. 리 선수보다 10년 전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 미국 종합격투기대회(UFC)에서 활동 중인 재일동포 4세 출신의 일본인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成勳·35) 선수다. 우리에겐 추성훈으로 통하는 그다. 그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 또 얼마나 극복됐는지 궁금했다. 8일 도쿄의 히로오(廣尾)에 있는 도장에서 j가 그를 만났다.



도쿄=오대영 선임기자



●이충성 선수가 한국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가.(이 선수는 2004년 한국 청소년 대표로 활동했다. 하지만 ‘반(半)쪽발이’라는 말을 들으며 차별을 받은 뒤 2007년 일본에 귀화했다.)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큼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의 스포츠계가 10년 전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그런 일(차별)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 꼭 한국만의 문제인가. 일본에도 비슷한 일은 없는가.



 “그렇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문화 등 다른 분야에서도 차별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있는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 선수가 한국에서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으니 문제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한국 스포츠계가 이들을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개인이나 한국,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① 1998년 4월 부산시청에 입단해 국내 선수로 활약하던 모습. 2001년 국가대표가 된 뒤 그해 4월 몽골 울란바토르 아시아선수권대회와 6월 이란 FAJR 국제유도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했다. ②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추성훈이 결승전에서 한국의 안동진에게 굳히기 공격을 하고 있다.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③ 2004년부터 이종격투기로 전향한 추성훈은 경기 때마다 도복 양쪽 어깨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나란히 달고 나왔다. ④ 2009년 데뷔한 UFC 경기 모습. ⑤ 7일 방영된 SBS 드라마 ‘아테나’에서 이정우(정우성 분)를 구하려고 대신 총탄을 맞는 장면. ⑥ 8일 그의 도장에서 만난 추성훈.







●재일동포 4세였는데, 귀화하는 데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나.(그는 1998년부터 부산시청 소속으로 뛰면서 한국 유도 국가대표까지 지냈다. 그러다 2001년 10월 귀화해 성까지 ‘아키야마(秋山)’로 바꿨다. 특히 그는 당시 “특정 대학 출신 심판들이 편파적으로 경기를 운영해 경기에서 이겨도 판정에선 진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국에선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차별론을 여러 차례 제기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유도를 하고 싶었다. 한국 국적으로는 일본의 대표가 될 수 없었다. 운동만 계속할 수 있다면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의 조상은 100년 전쯤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어머니는 한국의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부모님들은 내가 원한다면 귀화해도 좋다고 찬성했다. 그래도 부모님과 여동생은 아직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선수는 귀화하면서도 성은 그대로 유지했다. 왜 일본 성으로 바꿨나.



 “당시는 한국 성으로 귀화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국 성의 흔적이라도 남기려고 ‘아키야마’로 정했다. 지금은 한국 성으로 귀화할 수 있게 바뀌어서 다행이다.”



●재일동포 3, 4세가 귀화를 고민한다면 어떻게 조언하겠나.(재일동포 1, 2세는 아무리 오래 일본에 살고 있어도 여전히 ‘뿌리’(고국)를 소중히 여기고 있지만, 후손들은 핏줄보다는 ‘현실(국적)’을 중시해 귀화가 늘고 있는 것이 재일동포 사회의 현실이다.)



 “귀화하는 재일동포 3, 4세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말도 모르고 앞으로도 계속 일본에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흐름이 생기고 있다. 나처럼 국가대표로 유도를 하겠다는 등의 뚜렷하고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귀화를 권유하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그저 편하기 위해서라면 귀화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엔 귀화를 해도 차별을 우려해 한국계라는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많았다. 추 선수나 이 선수는 한국계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과거에 비해 일본 사회가 다소 개방적이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은 남아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차별이 줄기는 하겠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출신을 숨기는 건 뿌리를 부인하는 비겁한 짓이다. 귀화를 하더라도 한국계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동포 3, 4세가 많은데.(귀화를 해도 한국과 일본의 중간지대에서 살아가는 재일동포가 많다. 그래서 스스로를 ‘세계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들도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느낀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귀화를 한다고 해서 국적을 버린 나라를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두 개의 조국을 다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혼』이란 자서전을 썼나.



 “두 개의 혼이란 과거의 일들과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을 의미한다. 책에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과 일본이 다 좋다고 썼다. 앞으로 양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한국과 일본 중 어디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가.



 “정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 형태는 일본 국적을 갖고 있지만 내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도복에 한국과 일본 국기를 붙이고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재일동포로서 장점도 있을 텐데.



 “양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장점이다. 일본인은 일본의 것, 한국인은 한국의 것밖에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양국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양국의 경계를 허물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있다면.



 “한국민은 매우 따뜻하고 정이 많다. 그런 점이 좋다. 일본에는 없는 점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냉정하게 판단하고 감정적이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한·일 양국의 교류와 미래를 위해 재일동포 3, 4세들의 모임을 만들어 활동할 생각은 없는가.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닿으면 이충성 선수와도 만나고 싶다. 같이 일을 하거나 응원할 수도 있고 한국에도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도 팬이 많다.



 “약 1만여 명의 팬클럽 회원이 있다. 부산에 있는 지인이 팬을 관리한다. 서울에서 두 차례 시합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많은 팬이 경기장에 와서 응원을 했다.”



●한국엔 자주 오는가.



 “방송과 광고 출연 등을 위해 매달 한 차례 정도는 한국에 간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한 드라마에 출연했다. 2, 3분 출연에 불과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매우 즐겁다. 다른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생각 중이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본에선 외국인 참정권 허용 등 재일동포들을 위해 할 일이 많다. 앞으로 정치를 해볼 생각은 없나.



 “없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회가 닿는다면 영화나 드라마 활동은 할 생각이 있다.”



●2004년부터 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위험한 운동인데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나보다 덩치가 큰 사람들과 시합을 할 때면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스포츠이기 때문에 위험하지는 않다. 다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어떤 스포츠나 마찬가지다. 나는 즐겁다. 다치지 않으면 매년 몇 차례 출전을 한다. UFC 선수로 3년째 활동하고 있다. 나이로 치면 격투기 선수 가운데 내가 중간 정도다. 40세를 넘어서까지 활동하는 선수들도 있다.”



●연습은 어떻게 하는가.



 “1년6개월 전쯤 집 가까이에 230㎡(약 70평) 규모의 도장을 열고 유도와 격투기를 가르치고 있다. 나도 여기서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연습한다. 원래 유도만 했기 때문에 격투기를 위해 복싱도 연습을 하는데 어렵다.”



●부인이 일본인이고 유명한 모델이다. 미인과 사니 좋은가.



 “아내는 지금도 모델로 활동 중이다. 아이는 아직 없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났는데 항상 감사하고 있다. 식사도 만들어주고. 이런 저런 조언도 해준다. 나에게 매우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이다. 또 해서 안 되는 것은 항상 안 된다고 말해주기 때문에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시간이 날 때엔 시합장에도 함께 간다.”



●베스트 드레서로 유명하다.



 “옷이 좋다. 어떤 옷이든 잘 입으려고 한다.”



추성훈 (1m78㎝, 88㎏)



1975년 7월29일 일본 오사카 출생

부친은 유명 유도선수 추계이씨

유도 명문 일본 긴키대학교 졸업

1998년 부산시청 유도팀 입단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 잃자 일본으로 귀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일본 대표, 81㎏급 금메달

2004년 프로격투기 선수로 전향

2006년 K-1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2009년 3월 야노 시호, 추성훈과의 혼인신고 사실 공개

결혼식은 10월에 올림

7월 격투기 메이저대회 UFC 데뷔전

10월 도쿄에 자신의 도장 오픈





도쿄=오대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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