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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사상 최대 3244명 희망 퇴직, 그 후 석 달





“난 뼛속까지 은행 물 들었지만 … 바닥부터 다시 시작”
커플매니저로 변신한 유선재씨



유선재 닥스클럽 이사는 국민은행에서 지난해 11월 희망퇴직한 뒤 커플매니저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미리 준비만 한다면 희망퇴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올겨울, 금융권엔 명예퇴직 바람이 거셌다. 대우증권·삼성증권·우리투자증권·신한카드·삼성카드·삼성화재가 30~1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11월 국민은행의 희망퇴직이 큰 화제였다. 3244명으로 금융권 사상 최대 규모였고, 퇴직 조건도 업계 최고수준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그 많은 희망퇴직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명함 뒷면을 봐주세요.”



 이달 초, 결혼정보업체인 닥스클럽 유선재(57) 이사는 만나자마자 명함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뒷면으로 돌리니 석 줄짜리 경력이 쓰여 있다. ‘(전) KB국민은행 압구정역지점장, 훼밀리APT지점장, 강남영업본부 부장’. “나는 이미 뼛속까지 국민은행 물이 들어 있는 사람”이라며 웃었다. 한 달 교육을 받고 올 1월 3일부터 이 회사로 정식 출근했으니 아직 초보 커플매니저다. 200여 명 직원 중 최고령자이기도 하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그는 은행원이었다. 지난해 11월 11일이 그가 고교 졸업 뒤 37년 몸담아온 국민은행을 떠난 날이다.



 지점장 시절 그는 실력을 인정받았다. 7년 연속 업적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아 ‘업신(업적평가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이 앞에선 별 소용이 없었다. 55세를 앞둔 2008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직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죠. 개인은 그걸 인정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고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5년 동안 은행에서 후선업무를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60세부터 놀면서 지낼 순 없었다. 뭘 하며 살까를 고민하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억대 연봉 커플매니저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됐다. ‘나이 들수록 빛나는 직업’이란 문장이 눈에 쏙 들어왔다. 이거다 싶었다.



 “지점장 때 소개해 맺어진 고객 자녀 커플이 4쌍이에요. 고객들을 만나 말을 잘해야 하는 것도 은행원과 비슷하고요. ‘이거 나랑 맞을 거 같은데’ 생각이 들었죠.”



 인터넷을 뒤져 결혼정보회사는 어떤 곳이 있는지, 시장 전망은 어떤지 조사했다. 스무 살 때 이후 처음으로 이력서를 썼다. A4 3장을 빼곡히 채운 자기소개서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나는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읽는 재주가 있다. 나는 끈기와 열정이 있다. 나는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일하고 싶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 지난해 여름부터 곧 명예퇴직이 있을 거란 얘기가 돌았다. 지난해 10월 희망퇴직 신청 공고가 떴다. 희망퇴직 신청과 동시에 결혼정보업체 세 곳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쉬고 싶지 않으세요?” “밑바닥부터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답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고, 쉬는 게 익숙하지도 않다. 밑바닥부터 하라고 하면 하겠다”였다. 결과는 두 곳 합격. 둘 중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곳을 택했다.



 연봉 1억5000만원이던 지점장 시절과 비교하면 좋은 조건은 아닐 수 있다. 독립된 별도의 사무실도 없고, 연봉은 성과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예전에 지점장이었는데 하는 건 잊어야죠. 주위에서 본부장, 부행장 하다 은퇴한 분들이 더 힘들어해요. 갑자기 절벽으로 떨어진 기분이 드는 거죠. ‘나는 이랬는데’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아요.”



 그에겐 목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커플매니저라는 믿음을 고객에게 심어주는 것. 다른 하나는 새 직장에서 성공해, 은퇴 뒤 재취업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다.



1355명 … 계약직 전환

1542명 … 창업 준비중




유선재씨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재취업에 성공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3200여 명의 희망 퇴직자가 선택한 길은 크게 두 가지. 은행이나 계열사에서 2년간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 아니면 창업이다.



 국민은행·KB신용정보 등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희망 퇴직자는 1355명이다. 이들은 주로 내부 자정감사나 연체관리 같은 업무를 한다. 월급은 200만원 정도. A씨에게는 이 계약기간 2년이 충격 완충 지대다. 은행 울타리 밖에서 사는 법을 준비할 시간인 셈이다. 그는 최근 공인중개사와 투자상담사 자격증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답답하다. “50대 나이에 자격증 딴다고 취업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다른 회사에서도 우리 나이엔 다 나오는 걸요.”



 은행 울타리를 뛰쳐나가 홀로서기를 준비 중인 희망 퇴직자도 많다. 은행에 창업을 하겠다고 신청해놓은 희망 퇴직자가 1542명이나 된다. 지난달 창업교육을 받은 B씨는 “배울수록 겁이 난다”고 했다. ‘오래 할 수 있는 내 일을 찾겠다’고 생각했지만 뭘 해야 할지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음식점이나 카페가 할 만하다고 보고, 프랜차이즈 점포를 알아보고 있다. 그는 “퇴직금이 내 노후를 위해 남은 마지막 자금”이라며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고 말했다.



 C씨는 마침 자격증이 있어 공인중개사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막상 시장조사를 하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해 걱정이다. “공인중개사 중 상위 20~30% 안에 들어야 수익을 낸다는데, 내가 그 실력이 될지 좀 자신이 없네요.” 그는 후배들에게 퇴직 3~5년 전부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막상 나왔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후배들이 찾기를 바랍니다.”



글=한애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유선재 이사의 은퇴·재취업 조언

① 현직에 있을 땐 최선 다해라



‘일 잘하던 사람’이라는 평가는 나중에도 따라온다.



② 조직은 날 지켜줄 수 없다



조직은 내 생각대로 가지 않는다. 언젠간 떠날 곳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



③ 과거에 연연하지 마라



‘내가 이런 직위까지 했는데’라는 생각은 재취업에 독이 된다.



④ 정보가 힘이다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해서 조사하고 시장 분석까지 해둬라.



⑤ 재취업 땐 목표치를 다소 낮춰라



은퇴 뒤 재취업할 땐 목표 연봉을 기존의 3분의 2 정도로 설정하고, 대신 리스크를 낮춰라.



⑥ 일의 강도는 줄여라



인생 2막의 행복을 위해 취미와 건강을 돌보는 시간도 확보해라.



학력사항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1971년 3월~1974년 2월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1년 3월~1985년 2월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2005년 3월~2005년 8월



경력사항



●국민은행 입행 1974년 3월



●국민은행 압구정역지점장 2002년 3월~2006년 1월



●국민은행 훼밀리아파트지점장 2006년 2월~2008년 12월



●국민은행 강남지역본부 부장 2009년 1월~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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