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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배고픈 예술









예술가의 전통적 이미지는 괴팍한 기인(奇人)에 가깝다. “굉장히 열심히 세수도 않고 다니고/때묻은 바바리 코우트의 깃을 세워 올리면서/봉두난발한 머리카락의 비듬을 자랑했거니”(박남철, ‘시인연습’)라는 구절은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술인 줄 알고 남의 집 화장대에서 몰래 향수를 들이켰다는 시인(천상병)부터 아예 자신의 귀 일부를 잘라버린 화가(고흐)까지, 뛰어난 예술가들에겐 온갖 기기묘묘한 일화가 따라다닌다.



 예술적 성취와 삐딱함이 상관관계에 있다는 생각은 고대 서양에서 온 것이다. 플라톤 대화편 ‘이온’에 나오는 열광 이론이 근거라고 한다. 신들린 듯한 광기가 창조 행위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의 조각에 ‘신이 만든 작품’, 티치아노의 그림에 ‘신들린 듯한 붓놀림’이라는 찬사가 붙은 건 그래서란다. “미친 듯이 일하다가 무위도식하는 일이 번갈아 반복되는 것, 도덕을 어기는 일과 같이 눈에 띄는 행동과 사회적인 일탈·무절제·독신·동성애와 같이 성적으로 눈에 띄는 행동들, 불안·강박관념·침울함과 같은 신경증적인 특징이 (예술가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에 묘사돼 있다.”(베레나 크리거, 『예술가란 무엇인가』)



 가난과 고독도 예술가를 신비스럽게 만든다. ‘춥고 배고픈 천재’는 낭만주의 시대 이래 예술가를 둘러싼 가장 강력한 이미지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도 ‘가난한 천재’가 적지 않으며, 공교롭게도 그들의 그림값은 매우 비싸다. “우동과 간장으로 하루에 한 끼 먹는 날과 요행 두 끼 먹는 날도 있는, 그런 생활이었소. (…) 불을 필 수 없는 사방 아홉 자 냉방은 혼자 자는 사람에겐 더 차가워질 뿐 조금도 따뜻한 밤은 없었소.”(『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하지만 현실에서 가난은 예술가의 창작을 방해하는 고통일 뿐이다. 최근 지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30대 시나리오 작가가 월셋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지난해 말엔 인디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지하 전셋방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들의 배고픔 뒤엔 가수가 곡당 몇십원밖에 음원 수익을 나눠받지 못하고, 시나리오를 써도 영화 제작이 안 되면 원고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등 창작자를 홀대하는 모순이 있다. 모순이 있는 한 예술가는 춥고 배고프기만 할 뿐 재능을 펼치기란 요원하다. 신들린 듯한 열정만으로 천재가 되는 건 그 옛날 르네상스 시대에서나 가능했던 일일 테니까.



기선민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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