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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삼 의원, 1967년 대위 시절 세 차례 북한 침투해 33명 사살





당시 상관 윤필용은 만류





1960년대 말 국군이 북파 작전을 벌여 북한군 수십 명을 사살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달 24일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자유선진당 이진삼(사진) 의원과 김관진 국방장관의 국회 국방위 간담회 문답 과정에서다.



 ▶이 의원=“내가 이북에 세 번 들어가서 보복 작전한 걸 알고 있나.”



 ▶김 장관=“알고 있다.”



 ▶이 의원=“몸으로 때려 부순 거다. 33명이 사망했다.”



 두 사람이 거론한 작전은 67년 가을에 이뤄진 이른바 ‘필승공작’이다. 당시 제609방첩부대장이자 대위였던 이 의원은 북한 무장공비 출신 특수요원 3명과 함께 북한 황해도 개풍군에 침투했다. 금성천을 따라 들어간 이들은 당시 지뢰를 묻고 있던 북한군을 기습, 13명을 사살했다. 2차 침투에선 정찰 업무를 수행했고 3차 침투 때 북한군 20명을 사살했다. 이 의원의 당시 상관은 육군방첩부대장이었던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이었다고 한다. 윤 전 사령관이 “가지 말아라. 살아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만류했으나 이 의원이 “응징하겠다”고 자원했다고 한다.



 이 의원실에선 당시 상황에 대해 “ 무장공비가 요인 암살 등을 위해 100여 차례 휴전선을 침투하는 등 북한의 비정규전에 따른 피해가 극심했었다. 응사 수준으론 안 된다고 보고 이 의원이 나섰다. 북한은 이후 한동안 조용했다가 다시 침투를 재개했다”고 전했다. 실제 이듬해 1월 북한의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한 ‘김신조 사건’이 일어났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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