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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청산가리 든 담배 폐해 … 사회에 경종 울리고 싶었다”





12년째 외로운 소송 … 요양원서 만난 마지막 원고 방효정씨



방효정(62)씨가 “얼굴이 공개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사진촬영을 거절해 뒷모습만 찍었다. [홍혜진 기자]



폐암 환자들이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 며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른바 ‘담배 소송’) 항소심 선고가 오는 15일 서울고법에서 내려진다. 2007년 1월 1심 선고가 있은 지 4년 만이다. 199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담배 소송이 제기됐을 때 원고로 참여한 폐암 환자는 6명이었다. 하지만 1·2심 재판 도중 5명이 폐암으로 숨지고 방효정(62)씨만 남았다. 지난달 30일 ‘마지막 원고’ 방씨가 요양 중인 강원도 원주로 찾아가 그간의 이야기와 선고를 앞둔 심경을 들어봤다. 방씨는 건강이 상당히 회복됐다고 한다.



 방씨가 폐암 중기 진단을 받은 건 199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담배를 입에 문 지 약 30년 만이었다. 자꾸만 마른기침이 나고 몸이 무거웠다. 병원에 갔다. CT 사진 속 폐 한중간에 둥근 암덩어리가 달처럼 허옇게 떠 있었다. “왼쪽 폐 3분의 1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고 병원을 나서는데… 하, 또 담배 생각이 나데요.”



 수술 후에도 암과의 전쟁은 계속됐다. 여섯 걸음을 채 떼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곤 했다. 폐활량이 떨어져서였다. 방사선 치료만 26차례 받았다. 방씨는 지쳐갔다. 98년 6월 “금연운동협의회에서 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제기할 소송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라디오 광고가 귀에 들어왔다. 전화기를 들었다. 긴 소송의 시작이었다.



 방씨가 담배에 빠진 것은 70년 군에 입대하면서다. 군에선 ‘화랑’ 담배를 이틀에 한 갑꼴로 꼬박꼬박 지급했다. 필터도 없이 담뱃잎을 종이에 둘둘 말아만 놓은 독한 담배였지만 제대할 때쯤엔 ‘골초’가 되어 있었다. 담배 세금이 지방세에 포함되면서부터는 시·군이 나서 ‘우리 고장 담배 사 피우기 운동’도 벌였다. 고향 다녀오는 길에 너도나도 담배를 ‘사재기’ 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방씨가 “국가와 담배 회사가 정책적으로 흡연을 부추겼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문구가 담뱃갑에 등장한 건 89년부터였다. 그러나 방씨는 “경고 문구를 붙인 그해에 담배인삼공사는 ‘흡연과 건강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고 오히려 이로운 점도 있다’는 내용의 책자를 배포했다”고 주장했다.



 방씨는 소송 과정에서 담배가 얼마나 해로운지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담배 맛을 더 좋게 하려고 발암물질인 벤조피렌·비소, 독성물질인 페놀·청산가리 등을 넣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7년 1심은 “방씨 등의 폐암이 흡연으로 인한 결과라는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방씨는 “이 소송을 통해 담배에 얼마나 많은 유해 첨가물이 있는지 공개되고 사회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저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정부나 KT&G가 나 같이 뭣 모르고 담배를 피웠다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치료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게 소원입니다.”



원주=홍혜진 기자



흡연-폐암 인과관계 입증이 관건



2라운드까지 간 담배소송

제조상 결함 vs 개인차 맞불

미국선 담배회사 패소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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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인생을 살던 폐암 환자 6명과 KT&G 간의 ‘담배 소송’은 1999년 시작됐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담배 소송을 연구하고 귀국한 배금자(50) 변호사는 금연운동협의회를 통해 소송 참가자를 모집했다. 60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배 변호사는 이 중에서 가족 병력과 환자의 직업, 생활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큰 사람들만 추렸다. 까다로운 심사 끝에 6명이 최종 선발됐다.



 담배 소송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환자들의 폐암 발병과 흡연 사이에 역학적 인과관계가 있는지 ▶니코틴 외 유해물질이 담배에 포함된 게 제조상·설계상 결함인지였다. 담배 제조상의 결함 등을 입증하면 KT&G에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입증하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재판장 조경란 부장)는 “한 가족당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담배를 오래 피웠다는 것만으로 폐암이 발생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폐암은 유전적 요인과 식이습관, 직업적 노출, 술, 대기 오염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는 의학적 소견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KT&G가 담배 향과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첨가제를 넣거나 니코틴 함량을 조작했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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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들은 즉시 항소했고 법정 공방은 2라운드로 이어졌다.



 항소심 선고를 일주일 앞두고 배 변호사는 “지금까지 우리가 법정 다툼을 포기하지 않은 건 정부와 담배 회사가 조금이라도 책임 의식을 갖고 양심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KT&G 측 입장도 단호하다.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 박교선 변호사는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원고 개개인의 폐암 발병과 흡연을 직접적으로 연관 지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담배에 일부 유해 성분이 포함됐다고 하지만, 지극히 소량이며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했다.



 한편 1950년대 ‘담배 소송’이 시작된 미국에서는 90년대부터 흡연자들의 승소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2009년에는 미 연방대법원이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가 피해자에게 사상 최고액인 8080만 달러(약 900억원)를 배상하도록 확정 판결했다.



 15일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 결과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 결과는 한국에서의 담배소송에 대해 법적 의미를 결정 짓는다. 원고 승소 판결이 나면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던 폐암환자들이 줄줄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원고가 패소하면 담배회사는 당분간 폐암 유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제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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