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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퍼져가는 민주화 물결, 혼돈 속의 민주정치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민주화 물결은 아랍 세계에까지 밀려 가고 있는데 민주정치는 곳곳에서 혼돈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근대 민주정치는 세 번의 커다란 민주화 물결의 소산이라고 정치학자들은 기술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 독립과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서구식 공화정과 의회정치의 제도화를 진전시켰던 물결이다. 둘째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전체주의 국가들의 민주화와 제국주의 몰락으로 인도를 비롯한 서구 식민지들이 민주국가로 독립하게 된 민주화 제2의 물결이다. 셋째, 즉 민주화 제3의 물결은 75년 스페인에서 시작해 포르투갈과 그리스 등으로 이어진 권위주의체제로부터의 혁명적 전환의 물결을 말하며, 한국의 87년 6월항쟁과 직선제 개헌에 따른 6공화국의 출범도 그 물결을 탔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세 차례에 걸친 민주화 물결 덕분에 시장의 세계화까지 맞은 21세기 지구촌에서는 민주주의의 전성기를 경험할 듯싶었지만 막상 오늘의 세계 정세를 보면 오히려 민주정치의 불안정과 시련이 일상화된 형국이다.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국임을 자랑하던 미국에선 이념적 분열이 연방의원에 대한 총격까지 빚어내는가 하면 의회민주주의의 모범으로 간주되던 영국을 비롯한 유럽 민주국가에서도 폭력을 수반한 대중의 시위 사태가 꼬리를 물고 있다.



 한편 민주화 제2의 물결로 출발해 반세기에 걸친 안정된 정당정치를 운영하던 일본도 극도로 불안정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보수의 유언』이란 저서에서 올해 93세의 나카소네(中曾根) 전 총리조차 위기의 일본을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한 마지막 제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혼미를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이탈리아 민주정치의 경우 각종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지탱되는 유일한 이유는 국가 통치의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의 정치적 한계와 2001년 G8 정상회의 때 폭력으로 난장판을 벌였던 급진세력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가 민주적 정권교체의 대안 부재라는 사태로 이어진 결과라고 설명되는데, 이는 결국 의회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 시대로부터 평화적 전환을 이룩한 민주화 제3의 물결의 선두 주자인 스페인을 비롯한 포르투갈·그리스 등 남유럽의 민주국가들이 작금의 금융위기 와중에서 가장 불안한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도 결코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민주정치뿐 아니라 경제 성장의 차원에서도 선진국임을 과시하던 이들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재정 파탄은 복합적 원인의 결과이겠지만 민주화의 흥분 속에서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려는 정치인들의 무절제한 경쟁도 결정적 요인의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민주화 제3의 물결을 성공적으로 탔던 국가로 자주 지목되는 한국도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이처럼 선진 민주주의든 후발 민주국가이든 간에 모두 불안정과 비능률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시점에 그동안 장기집권과 권력세습을 관행으로 정착시켜 왔던 아랍·중동 지역에서도 기존 체제에 대한 강력한 민중의 저항이 연일 신문을 덮고 있다. 튀니지·예멘을 시작으로 이집트까지 번져 가고 있는 민중봉기는 민주화 제4의 물결의 시발점이 될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한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권위주의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특유의 ‘권위주의 시장경제’를 민주주의체제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발전 과정이 어떤 형식으로 민주화의 물결과 연계될 수 있을까 여부는 우리 세대 최대의 역사적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다수 민주주의체제가 겪고 있는 시련과 위기는 분열의 정치가 통합의 정치를 밀어내고, 국가의 부실·방만한 경영이 건전·책임경영보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서 비롯됐다는 공통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안정된 민주국가로 무리 없이 지목할 수 있는 독일의 경우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과 야당인 사민당이 공히 분열과 대결보다는 통합과 협조의 민주정치를 이끄는 데서 오는 드문 성공사례라고 하겠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 민주체제와, 특히 민주화 제3의 물결로 민주국가 대열에 참여하게 된 나라들은 이제 통합과 분열의 갈림길에서 정치제도, 문화, 리더십의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의 틀을 바로잡을 비상 시점에 이르렀다.



 한국의 경우 산업화·민주화·선진화의 업적을 자축하던 관행은 이쯤에서 접어 두고 우리 민주정치가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가 되도록 빠른 개혁의 길을 모색하는 데 국민적 힘을 모아야겠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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