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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국방과학연구소 공병찬 연구원의 새해 희망가





“폭발사고로 양팔 잃었지만 진정한 사랑 얻었죠”



국방과학연구소 폭발 사고로 두 팔을 잃은 공병찬씨가 전자 의수를 끼고 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이한길 기자]



지난 1일, 서울 한강성심병원 재활치료센터. 한 남자가 전자의수에 연필을 끼운 뒤 시집을 보며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써 내려갔다. 1년2개월 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공병찬(34)씨였다. 반 바닥을 채우기도 전에 공씨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옆에서 시집을 넘겨주던 부인 박종화(32)씨가 한글선생님처럼 “조금 더 써 보라”며 잔소리를 했다. “이제 한 바닥은 거뜬하잖아?” 부인은 군말 없이 남은 반 바닥을 채우는 남편을 대견한 듯 바라봤다.



 공씨는 2009년 12월, 경기도 포천 국방과학연구소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던 중 견인포 폭발사고로 양팔을 잃었다. 당시 공씨의 앞에 서 있던 동료 1명은 숨졌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공씨는 포탄이 터지면서 폐에 화염이 들어가 패혈증으로 위독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보, 미안해.” 사고 직후 달려간 부인 앞에서 남편은 동공이 풀린 채 연방 같은 말만 반복했다. 얼굴은 검게 그슬려 군데군데 피부가 벗겨지고, 온몸이 탄약 파편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였다. 박씨는 “괜찮다. 그저 살아만 있어 달라”며 남편을 위로했다.



 8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부인은 병원 근처에 모텔방을 잡고 시부모와 지내며 남편을 간호했다. 부인에게 그해 겨울은 가장 추웠다. 그리고 남편은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의식을 되찾은 공씨에게 현실이 밀려왔다. 15년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이 넘은 때였다. 둘 다 직장이 변변찮아 결혼을 미루다 적금 1000만원을 들고 부모님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혼인신고도 하기 전이었다. 공씨는 평생 고생만 시킬 아내를 ‘보내 줘야’겠다고 생각했고, 주변에선 “혼인신고도 안 했는데…”라는 수군거림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 박씨는 그길로 군청에 가 혼인신고를 마쳤다.



 부부는 24시간 붙어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팔이 돼 등을 긁어 줬고, 화장실 뒤처리까지 도맡았다. 한순간에 장애를 갖게 되니 여러 힘든 일이 있었지만 공씨는 긍정적이다. “다리는 안 다쳤다. 죽음의 목전에 다녀오니 욕심을 버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에게 2011년은 새 삶을 시작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아내의 고생을 우려해 남편이 반대했지만 아내가 “키울 수 있다”며 고집한 끝에 지난해 말 아이가 생겼다. 5월엔 공씨의 연구소 복귀가 예정돼 있고, 9월 부부는 부모가 된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이의 태명을 ‘복덩이’라고 지었다. 새해 소망을 묻자 이 부부는 “그동안 힘들었으니 그냥 행복하게 살아야죠. 복덩이가 우리 집에 온 만큼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네요”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걱정거리가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의수 요양비를 청구했지만 지급 조건과 맞지 않는다며 극히 일부만 받게 된 것이다. 공씨는 “차후 의수 교체 때 지원받지 못하게 돼 문제”라며 이의 신청을 하기로 했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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