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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청변 반란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美軍政)에 법질서 복구는 시급한 현안이었다. 식민지 시대를 대체할 사법체계를 재건해 극심한 혼란을 수습해야 했다. 당시 남한에 있는 한국인 법률가는 15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수의 판·검사 경력자는 친일파라는 지탄을 받았다. 재판소와 검사국(검찰)에 채울 새 판·검사가 필요했다. ‘사법의 한국인화’ 플랜이 가동됐다. 일제 때 주변부를 맴돌던 한국인이 졸지에 중심부로 진입했다. 당시 ‘빅 스리’로 불렸던 김병로 사법부장,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검찰총장은 ‘재야’ 법조인이었다. 이들은 일제시대 항일 변론과 민족주의 활동을 벌여 법률가와 정치가로서 명망을 쌓았다. 법률 지망생에게도 기회였다. 특별임용고시, 사법요원양성시험 등을 통해 판·검사가 대거 충원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48년 8월엔 판사 156명과 검사 145명을 확보해 간신히 모양새를 갖췄다. 반면 변호사는 60여 명에 불과했다. 판·검사로 몰리다 보니 변호사는 귀했다. 49년 변호사법 제정 이후 변호사 자격은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야 했다. 20여 명을 선발하는 고시의 좁은 문을 통과한 인재들은 대부분 판·검사로 임용됐다. 그렇다 보니 판·검사 출신의 전관(前官)이 변호사가 되는 구조가 한동안 지속됐다.

 변호사는 80년대 ‘1000명 시대’를 열었다. 2000년대 들어 한 해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로 급증했다. 요즘은 변호사가 1만 명을 넘었다. 올 1월 수료한 사법연수원생 10명 중 4명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연수원을 떠났다. 해방 후와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어제 서울변호사회 회장 선거에서 34세의 신참 변호사가 돌풍을 일으켰다. 소속 변호사 8000명의 수장을 맡겠다고 나서 26표 차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판·검사 경력 없이 개업한 변호사 경력 5년 이하의 청년변호사(청변·靑辯)들이 주도한 ‘반란’이다. 청변의 다급한 심정을 반영했다. 조만간 로스쿨 졸업생까지 쏟아져 나오면 법률시장은 포화상태가 된다. 변호사로 밥 벌어먹기 힘든 세상이 오는 것이다.

 변호사는 그저 자격증이다. ‘변호사로 떼돈을 번다’는 환상을 깨야 한다. 지금도 전국 83개 시·군·구는 변호사가 한 명도 없다. 법적 조력을 얻기가 그만큼 힘들다. 한 원로 변호사는 “애환과 보람이 묻힌 직업”이라고 했다. 서민을 보듬는 낮은 데로 임한다면 할 일은 널려 있지 않을까.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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