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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영웅된 이충성 ‘내 성은 LEE’




일본 대표 이충성이 30일(한국시간) 호주와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낸 후 엄지로 유니폼 등에 새겨진 ‘Lee’를 가리키고 있다. 재일동포 4세인 그는 2007년 2월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성은 바꾸지 않았다. [OSEN]


일본 축구대표팀이 30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1-0으로 승리하며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연장 후반 4분 왼발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뽑은 리 다다나리(26·히로시마)는 일본의 영웅으로 올라섰다.

 리 다다나리(李忠成). 재일동포 4세인 그는 한국 취재진과 마주치자 “한국말이 서툴러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일본어로 “난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니고 축구선수로서 여기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완전한 한국인도, 일본인도 될 수 없던 그에게 조국은 ‘축구’뿐이라는 말이었을까. 결승골을 뽑아낸 그는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등에 새겨있는 ‘Lee’를 가리켰다. 이충성은 ‘리 다다나리’라는 이름의 일본인이 됐지만 한국 성인 ‘이씨’를 지켰다.




우승 트로피를 보고 있는 이충성. [도하=뉴시스]

 유소년 시절 도쿄 지역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의 어릴 적 꿈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었다. 2004년 기회가 왔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19(19세 이하) 선수권을 준비하는 한국 U-19 대표팀이 파주 NFC(대표팀훈련센터)로 그를 불렀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의 수준은 높았다. 당시 U-19 대표팀 공격라인에는 박주영(모나코)·김승용(감바 오사카)·신영록(제주) 등 유망주가 즐비했다. 무엇보다 한국 선수들의 차가운 시선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한국말을 제대로 못 하는 그는 ‘왕따’였다. 그는 지난해 국내 방송과 인터뷰에서 “‘반쪽바리’란 말까지 들었다. 쇼크였다”고 회상했다.

 2006년 일본 올림픽 대표팀에서 러브콜이 왔다. 일본 올림픽팀 합류를 위해 그해 9월 귀화신청을 한 그는 2007년 2월 일본국적을 취득했다. 사회생활이 불편해 한때 ‘하시모토 다다나리’란 이름을 쓰기도 한 그는 귀화를 하며 이씨 성을 지켰다. ‘조센진’이라는 차별에도 한국 국적을 지켰던 할아버지의 묘 앞에서 “이씨 성만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귀화신청 때 친척들의 반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충성의 어머니 정유미씨는 “네 뜻을 밀고 나가라”며 아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나는 재일동포란 자부심을 안고 뛴다. 이제 재일동포란 사실을 숨기는 시대는 지났다”며 스스로를 ‘신일본인’이라 불렀다. 2000년 박강조(고베)가 한국 대표로 뛰었고 정대세(보훔)는 2007년부터 북한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재일동포로 일본대표가 된 건 이충성이 처음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던 그는 2009년까지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지난해 후반기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을 틈타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에이스로 부활했다. 후반기 15경기에서 13골(컵대회 포함)을 몰아쳐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한다’는 알베르토 자케로니 일본 대표팀 감독의 낙점을 받았다. 아시안컵에서는 결승전 교체출전 이전까지 조별리그 1차전 요르단과의 경기에 교체로 나선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도 ‘영웅이 된다’는 말을 되뇌었다. 모두의 염원을 담은 결승골이었다”고 기뻐했다.

 한편 이충성은 국내에서 ‘슈가’라는 그룹으로 활동했던 가수 아유미의 연인이다. 일본 언론은 지난해 초 그와 아유미가 교제 중이라고 보도했다. 재일동포 3세 아유미는 2009년부터 일본에서 ‘아이코닉(ICONIQ)’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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