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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커니 나를 돌아본다, 이게 쌓여 시가 되나보다




천양희 시인이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를 냈다. “최근 몇 년간 세상에 대해 자꾸 질문을 던지게 됐다. 그 결과가 이번 시집에 담겼다”고 했다. [김형수 기자]


1994년 출간된 천양희씨의 시집 『마음의 수수밭』에 대해 후배 시인 장석주는 다음 같이 평한 바 있다. “천양희의 시들은 ‘다시 써야 할 생’ 혹은 ‘세상이 잘못 읽은 생’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천씨 시에 나타난 삶에 대한 반성이 단순한 후회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삶의 절벽에서 바닥까지, 낙차가 크다 보니 절망이 지독한 걸 게다. 하지만 천씨는 상처를 아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힘겹게 길을 찾아 생(生)으로 나가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천양희(69)씨가 새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창비)를 냈다. 94년과 2011년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오래된 골목』(1998), 『너무 많은 입』(2005) 같은 시집을 냈지만 아무래도 새 시집 역시 『마음의…』의 연장선상에서 읽게 된다.

 94년과 단순 비교할 때 한층 밝아진 느낌이다. 제목부터가 삶의 고통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난 관조적인 냄새를 풍긴다.

 전체 4부 중 3부에는 가벼운 시편이 많다. 시 ‘오래된 농담’은 객쩍지만 의미심장한 저잣거리 농담을 옮긴 것이다. 언덕길 숨차게 오르던 늙은 아내와 남편, 서로 업어주기로 한다. 먼저 업힌 아내가 ‘나, 생각보다 무겁지?’ 겸연쩍게 묻는다. 남편의 답이 걸작이다.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남편이 업혀 ‘나, 생각보다 가볍지?’ 묻자 아내, 답한다.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1부의 짧은 시 ‘들’은 만만치 않은 성찰이 담겼다. ‘올라갈 길도 없고/내려갈 길도 없는 들//그래서/넓이를 가지는 들//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더 넓은 들’.

 천씨에게 “이전 시집과 어떤 점이 다르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말하다가도, 쌀을 씻다가도 어딘가를 우두커니 한참을 바라보며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런 우두커니가 쌓여 시가 되는 것 같다.” ‘우두커니 상태’에 빠지는 이유는 세상이 뭔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억울함 때문이다. 보다 안온해졌다 해도 시련의 담금질을 거쳐 시가 나오는 사정은 여전하다. “조용하고 편안하거나 굉장히 복잡하고 치열할 때는 시가 나오지 않는다. 활활 불타버린 뒤 재가 됐을 때 나를 담금질을 해야 시가 나온다.” 고즈넉하고 쓸쓸한 시의 껍데기 안에 여전히 홧홧한 불씨를 품고 있다는 거다.

 ‘2월은 홀로 걷는 달’을 소개한다. 구정이다. 이런 반성이 필요할 듯하다.

 ‘헤맨다고 다 방황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며/미아리를 미아처럼 걸었다/기척도 없이 오는 눈발을/빛인 듯 받으며 소리 없이 걸었다/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나/말할 수 없어 말없이 걸었다/길이 너무 미끄러워/그래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중얼거리며 걸었다/열리면 닫기 어려운 것이/고생문(苦生門)이란 걸 모르고 산 어미같이 걸었다/사람이 괴로운 건 관계 때문이란 말 생각나/지나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걸었다/불가능한 것 기대한 게 잘못이었나 후회하다/서쪽을 오래 바라보며 걸었다/오늘 내 발자국은 마침내 뒷사람의/길이 된다는 말 곱씹으며 걸었다//나의 진짜 주소는/집이 아니라 길인가?/길에게 물으며 홀로 걸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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