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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鴻爪

시간이 또 하나의 길목을 지난다. 음력으로 우리가 맞이하는 설이 곧 닥치고, 지금은 며칠 지나면 구랍(舊臘)으로 불릴 한 해의 끝이다.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게 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즈음이면 왠지 우울해진다.

 국어사전에 ‘홍조(鴻爪)’라는 단어가 있다. ‘기러기가 남긴 발자국’으로 풀이하는 말이다. 좀 더 풀자면 그렇게 덧없이 찍혀 있는 발자국처럼 곧 스러져 없어질 기억이나 흔적을 뜻한다. 바로 인생(人生)의 모습이 그렇다고 해서 사전에 올린 단어다.

 삶이 궁극에는 허무(虛無)하고 무상(無常)하다는 점은 제 각성(覺醒)의 힘을 지니고 삶을 살아본 청장년(靑壯年) 이상의 사람이면 다 눈치 채고 있는 것. 그러나 기러기가 남긴 발자국에서 인생의 허무함만을 느낀다면 조금 개운치 않다.

 그 단어를 만든 주인공은 북송(北宋)의 문인 소식(蘇軾·소동파)이다. 그가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수년 전 과거를 보러 나선 길에 머물렀던 절을 다시 지나다가 아우에게 보낸 시(詩)에 등장한다.

 “인생이 여기저기 떠도는 것 무엇 같을까? 기러기가 눈 진흙 밟는 것 같겠지/ 진흙 위에 우연히 발톱 자국 나겠지만, 기러기 날아가면 동쪽 서쪽 따지겠는가?(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중국시가선』, 지영재 편역, 을유)

 눈 쌓인 진흙탕 위에 어지러이 찍혀 있는 기러기의 발자국, 그리고 그들이 날아간 뒤에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실(消失)과 망각(忘却)으로 향하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시의 마지막은 이렇게 맺어진다. “지난날 험한 산골길 아직 기억하는가? 길 멀어 사람 지치고 당나귀 울었었지(往日崎嶇還記否, 路長人困蹇驢嘶).”(상동)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의 눈과 귀에 들어온 것은 ‘길을 나선 사람과 당나귀의 긴 울음소리’다. 시인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여기에 담겨 있다고 보인다. 세월의 무상함을 견디면서 꿋꿋이 일어나 길을 나서려는 사람의 의연(毅然)함이다.

 그래서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성어를 무상과 허무로 풀면 50점, 꿋꿋이 길을 나서는 사람의 의지로 깊이 새기면 100점이다. 다가오는 새해, 인생의 답안지에 모두 만점(滿點) 그리시기를.

유광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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