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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미의 아티스트 인 차이나 (5) 차세대 블루칩 작가 인차오양







도시개발로 아틀리에가 강제철거 당하는 바람에 3개월 전 베이징 예술특구 798에 새로운 둥지를 튼 작가 인차오양(尹朝陽·41). 아직 페인트 냄새가 가시지 않은 새 스튜디오는 작가의 취향이 담긴 골동품들과 작품들이 조화를 이룬 덕분에 마치 오래된 아틀리에처럼 흥취가 넘쳐났다. 벽을 장식한 그림들은 모두 작가의 작품으로 아틀리에를 한 바퀴 휘 돌고 나니 인차오양의 시대별 화풍이 한눈에 느껴진다.

그는 30대에 작품가가 이미 억대 대열에 합류한, 잘나가는 작가다. 장샤오강(張曉剛), 웨민쥔(岳敏君) 등 블루칩 작가군을 잇는 차세대 주자 중 가장 젊다. 허난(河南)성 난양 출신으로 1996년 국립미술대학인 ‘중국미술학원’을 졸업했다. 798과 송좡(宋庄)에 아틀리에를 둘 만큼의 여유와 천재적 재능을 갖췄지만 매일매일 작업에 몰두하는 우직한 열정을 아직도 갖고 있다. 중국적 사유와 기법이 바탕이 된 일련의 작품들은 중국인의 품격을 갖췄다는 평가다.

“많은 이들이 인차오양을 당대 젊은 작가 중 최고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짧은 시기 동안 다양한 실험과 변화의 정신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아트미아’ 진현미 관장의 설명이다. 신격화된 그를 통해 괴리된 인간의 단상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는 ‘마오쩌둥’ 시리즈, 몰개성의 다수 군중을 통한 인간 고독을 그린 ‘천안문’ 시리즈, 그리고 최근 시작한 연작 ‘산수’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천안문’ 시리즈에서는 달무리 진 듯 몽환적인 화법을, ‘마오쩌둥’ 시리즈에서는 강렬한 아름다움을 지닌 나선형 기법을, ‘산사’ 시리즈에서는 붓터치가 살아있는 힘 있는 화풍을 선보였다.







그에게 아트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평등하게 교육받을 기회마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5년 동안 재수를 하며 독학한 미술 공부가 도시의 아이들에겐 반 년이면 충분한 거였더라. 운명을 바꾸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나의 경우 그것은 아트였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 자신의 재능을 알았을까. 이 질문에 그는 “붓을 처음 든 순간”이라고 들려주었다. 미술반에 들어가 붓을 든 순간, 스스로 재능이 있음이 느껴졌고 자신감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나의 맹목적 자신감은 바로 거기서 나온 것”이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니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야말로 ‘연명’하던 때, 미술에 대한 열정만이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러던 99년, 첫 작품이 1만 위안에 팔렸다. 평균 월급이 3000위안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기적이었다”고 그는 말하지만 그 노력의 강도는 얼마 컸을까.

“그림 속에는 작가의 다양한 체험이 녹아있는데, 관중은 그중에서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걸 끄집어내 동일시한다. 관중이 감동하는 포인트다. 나의 경우는 ‘불굴의 의지’다. 내 그림에는 인생의 깊고 무거움이 깃들어 있다.” 그의 그림은 설명이 없어도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여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그는 “예술은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시대 체험을 냉철한 사고와 통찰력으로 반영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좋은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 안에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현재 중국의 독특한 현실이 담겨있다. 그러나 철저히 시각적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이념은 배제됐다. “작가의 정치 참여는 반대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아틀리에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식 이젤이 눈길을 끌었다.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바닥으로 길게 빼놓은 버튼을 발로 밟으면 엘리베이터처럼 이젤이 자동으로 올라가고 내려간다. 이젤의 세로 폭만큼 스튜디오 바닥도 깊게 파냈다. 그 덕분에 이젤을 아래 위로 움직이기만 하면 아무리 큰 작품도 쪼그리거나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바닥을 깊게 파놓으니 물감이 그 안쪽으로 떨어져 아틀리에 바닥을 더럽히지 않아 이래저래 편하다고 했다.

그의 그림 그리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하룻밤에도 작품 하나를 그릴 정도다. 어떻게 가능한지 묻자 “난 맹목적 자신감으로 충만하고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지만 무례하진 않았고 ‘불굴의 의지’엔 온화함이 깃들여져 있었다.

불굴의 의지로 점철해온 덕분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는 작가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전시를 위해 쉼 없이 작품을 쏟아냈다. 화단·평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식대로 그야말로 전진만 했다는 그다. 이름의 무게를 지니기까지 고됐던 인생 역정은 다시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정작 완성된 그림은 염화미소의 부처처럼 온화하다. 그 답은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작가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게 잘 안 된다는 작가는, 이제야 개인의 역사와 결함들을 의연하게 마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이상적인 작품을 꿈꾸지 않는다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삶과 예술이 함께하는 것. 일상이 조금씩 쌓여 위대함을 이루는 것. 그것이 나의 예술 목표다.”

◇진현미=영어 이름은 미아(Mia). 베이징 다산쯔(大山子) 차오창디 예술특구에서 자신의 갤러리 ‘ARTMIA(아트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블루칩 작가들과의 만남을 중앙SUNDAY와 ‘레몬트리’에 전하고 있다.


이호선 레몬트리 편집장hosun72@joongang.co.kr 베이징 사진 문덕관(lamp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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