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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한 잔, 허무해서 한 잔 … 술이 여성들을 삼키고 있다




남성 알코올 중독은 줄고 있지만 여성 알코올 중독자는 늘고 있다. 여성은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치매간경화 위험이 2~3배 높다. [게티이미지]


#석 달 전 알코올전문병원에 입원한 장성숙(가명·55·서울 성동구)씨. 그녀는 10년 전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남편의 사업이 기울고, 말동무인 두 딸이 시집을 가고부터다. 남편은 일이 안 풀리면 장씨에게 화풀이를 했다. 답답함을 속으로만 삭이던 그녀는 남편이 출근한 뒤 부엌에서 술을 한두 잔씩 마셨다. 몇 년이 지나자 주량은 하루 한두 병으로 늘었다.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지지만 곧 깊은 우울감이 밀려왔다. 셋째 아들을 출가시키고 나서 그녀의 주량은 크게 늘었다. 장씨는 “외식을 하자며 가족이 여기로 데려왔다. 입원 전 3개월은 매일 소주 8~9병을 마셨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민유진(가명·35·경기도 성남시)씨. 술을 ‘증오’하던 민씨는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녀를 무너뜨린 건 입사 후 남성 직장동료와의 치열한 경쟁이었다. 대기업 해외무역 부서에 취업한 그녀는 첫날부터 폭탄주 세례를 받았다. 동료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에 끝까지 남아 술을 마셨다. 해가 거듭되면서 그녀는 남자동료에 밀려 승진이 누락됐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상사나 동료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일 때면 공격적으로 변했다. 직장생활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그녀를 계속 술로 유혹했다. 민씨는 집에선 옷장·서랍에 술을 숨겨놓고 가족들 몰래 마셨다. 음주를 나무라는 부모에게 폭언도 했다. 그녀는 “부모님이 내가 술에 취해 자는 동안 알코올전문병원으로 옮겨놨다”고 말했다.

남성 줄고 여성은 늘어 … 가족 무관심 큰 원인





여성 알코올 중독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받는 여성은 2005년 9638명에서 2009년 1만3035명으로 매년 6~10%씩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남성 알코올중독자 수가 매년 줄어드는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알코올질환 전문병원 다사랑병원 자료에 따르면 남성환자는 2008년 하반기 703명에서 2010년 하반기 568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성환자는 2008년 170명에서 2010년 195명으로 증가 추세다.

 여성 알코올중독자의 증가는 핵가족과 관련이 있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김대진 교수는 “할머니들 시대엔 한 집에 여러 세대가 같이 살아 평생 홀로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자녀와 남편이 모두 나가면 대부분 주부 혼자 집에 남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빈둥지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성은 우울증·소외감·허탈감 때문에 한두 잔 술을 시작해 습관이 되고, 결국 알코올중독자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남편의 외도·무관심, 자녀의 출가·무시·외면 등이 부채질을 한다.

 다사랑병원 이종섭 원장은 “우울증을 극복하려 한 두잔 마시지만 내성이 생기면서 더 깊은 우울증이 생긴다. 그 우울증은 또다시 술을 부르는 악순환 에 빠진다”고 말했다. 여성 알코올중독자 중 60~70%는 부엌에서부터 시작된 ‘키친 드링커’라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도 여성을 술독에 빠뜨리는 요인이다. 이종섭 원장은 “남성은 10~20대부터 술을 접해 비교적 방어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폭탄주 회식문화를 시작하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며 “게다가 술을 ‘강요’하는 직장 분위기가 여성 음주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음주, 여성에겐 더 큰 신체·정신적 피해

술은 여성 건강에 더 치명적이다. 김대진 교수는 “여성은 같은 기간,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남성보다 2~3배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온다”고 강조했다. 여성은 술 해독력이 남성의 50% 수준인 데다 여성의 뇌와 간은 남성에 비해 술에 훨씬 취약하다. 한 잔 받으면 한 잔 주는 식으로 똑같은 양을 마셔야 하는 우리나라 회식 문화가 여성의 몸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종섭 원장은 “같은 입사 동기가 같은 양의 술을 10년간 마셨을 때, 여성이 알코올성 치매에 걸릴 확률은 남성의 2~3배”라고 말했다. 여성 알코올중독자는 뇌의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 부분과 성격을 좌우하는 전두엽이 남성보다 더 많이 쪼그라든다. 간경화도 여성이 더 빨리 진행된다. 이뿐만 아니다. 알코올은 여성 호르몬을 교란시켜 각종 내분비계 질환과 골다공증도 가속화한다.

아내·엄마의 중독, 가족 붕괴로 이어져

여성의 알코올 중독은 남성에 비해 더 큰 사회적 손실을 가져온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 아내가 남편을 병원에도 데려가고, 돈도 벌고 육아도 책임진다. 하지만 여성 알코올중독자의 남편은 이를 숨기고 핍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가정은 무너지고 부부관계는 파탄 난다.

 여성 알코올중독증 환자를 줄이는 방법은 ‘관심’이다. 남궁기 교수는 “남성과 달리 여성 알코올중독자는 소외당한다는 기분 때문에 술을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특히 폐경기 이후, 자녀가 모두 출가한 다음에는 각별한 대화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섭 원장은 “알코올 중독은 가족이 함께 치료하는 병이다. 일찍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회복도 빠르고 재발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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