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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일본 군국주의 시절 ‘박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1929년 조선박람회 광고 엽서. 30년대 초까지 일제는 익명의 인물로 ‘조선’을 상징할 때에는 언제나 여성이나 노인 사진을 썼다. 노쇠·유약·순종 등을 한국인의 ‘민족성’으로 각인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인 남성에게 보병의 덕목인 ‘박력’을 요구한 것은 중일전쟁 무렵부터였다.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린 항우(項羽)는 죽기 직전 ‘해하가(垓下歌)’를 남겼다.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으나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도 나아가지 않는구나…(力拔山兮 氣蓋世 時不利兮 騶不逝…).” 2000여 년 뒤 우리 근대의 민족 영웅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기에 앞서 우덕순에게 ‘장부가(丈夫歌)’를 전했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丈夫處世兮 其志大矣 時造英雄兮 英雄造時…).” 항우는 기(氣)를, 안중근은 지(志)를 말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유지하며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 가치뿐 아니라 정신적 가치도 숭상했기 때문이다. 정신적 가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 속하는 것과 보통 사람은 감히 실천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는 것으로 나뉘었다. 동서양이 강조점은 달랐지만 효제충신(孝悌忠信),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성실, 겸손, 관용, 절제 등은 보편적 가치였으며,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심, 가망 없는 상황에서의 용기, 목숨과 맞바꾸는 신념 등은 보통 사람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영웅적 가치였다.

 조선 선비들이 숭상한 정신적 가치는 ‘기개(氣槪)’와 ‘지조(志操)’였다. 선비는 모름지기 범인(凡人)이 따를 수 없는 기상을 지녀야 했으며, 선비(士)의 마음(心)은 어떤 압력과 유혹에도 흔들려서는 안 됐다. 조선은 문치(文治)를 숭상했기에, 선비다움은 곧 남성다움이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일본인은 남성적이고 한국인은 여성적’이라는 이미지를 조작해 식민 지배를 남성의 여성 지배와 등치하려 했다. 관제엽서나 포스터는 ‘기생’ 등 여성으로 한국을 형상화했고, 학교에서는 방정(方正)한 품행만 앞세우고 기개와 지조는 뒤로 밀어냈다. 한국 역사도 의존과 타율로 일관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1930년대 초반 ‘박력(迫力)’이라는 신조어(新造語)가 등장하더니 곧 일본인과 한국인에 두루 통용되는 남성적 가치로 자리잡았다. 추진력이라는 말도 사람에게 쓰이기 시작했다. 밀어붙이는 힘이라는 뜻의 두 단어는 명령에 따라 물불 안 가리고 진격해야 하는 보병(步兵)에게나 어울리는 단어였다. 이후 반세기 넘게 군사문화가 지속되면서 한국에서는 박력이 남성다움을 대표하는 가치가 됐다.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1960년 조지훈이 쓴 ‘지조론’ 중 한 구절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남성다움이 지도력으로 혼동되기 쉽지만, 박력은 조선시대 장부가 숭상할 가치가 아니었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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