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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얼음밥을 먹으며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 대학원 교수
미국 사우스캐롤 라이나대학 박사(매체경영학)


나는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제때에 얼마간 양만 채우는 데 만족하니 미식가는 더더욱 아니다. 채식을 즐기는 내가 유독 좋아하는 것이 찰밥이다. 웬만큼 나이를 먹었는데도 생일날 아이처럼 아직도 찰밥이 나오면 기분이 좋다. 신혼 때에는 아내에게 찰밥을 요구했다가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시골이라고 해도 지방 대도시라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어머니는 매번 뭘 가져오지 못함에 대해 미안해하신다. 그런 어머니가 가끔 자랑스럽게 내놓는 것이 딱 한가지 있다. 바로 찰밥이다. 질 좋은 찹쌀에다 잣과 콩을 적당히 섞은 보온 밥통의 찰밥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찰밥을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아내는 물론이고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한 아이들은 찰밥의 끈적거림에 아예 질색을 한다. 내가 억지로라도 한 숟갈 넘겨주면 불만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포기하고 나 혼자만 먹는다. 밥이라는 게 묘해 혼자 먹으니 그 옛날 맛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내려가셨다. 혼자만 먹는 찰밥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아내는 남은 찰밥을 주먹밥으로 만들어 냉동실에 넣는다. 어머니의 사랑은 냉동실에 꽁꽁 얼어 있다. 나는 가끔 얼음뭉치 찰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덥혀 먹기도 한다. 그러나 언 밥은 쉬이 해동되지 않고, 또 바쁜 아침 시간에 번잡을 떨기가 미안해 웬만큼 녹았다 싶으면 그냥 먹는다. 그래서 가끔은 입 속에서 얼음덩이 씹히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이럴 경우 아이들은 얼음 밥을 좋아하는 이상한 아버지라고 놀리기도 한다.

 요즘 같은 추운 날, 차가운 찰밥을 먹고 나오면 온몸이 덜덜 떨린다. 그러나 나는 그 차가운 찰밥 속에 녹아 있는 어머니의 뜨거운 마음에, 운전대를 잡으면서 가끔은 목이 멘다.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내놓는 찰밥도 이제 먹을 날이 많지 않아 보인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는 이제 내일모레가 여든이다. 아버지와 단둘이서 사신다. 어릴 때 마당에 있던 연못은 메워지고 없으며 그 큰 목련과 소나무도 베어졌다. 그 자리에는 늙은 부모님이 소일 삼아 가꾸는 푸성귀 밭이 남루하게 자리하고 있다. 마당 한 쪽을 가득 채웠던 금잔디도 사라진 지 오래다. 가끔 불평하는 내게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늙어 봐라. 정원 가꾸기도 힘들고, 그냥 푸성귀 농사가 최고라고.

 해마다 명절날, 제사를 모신 뒤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형제들은 산행을 다녔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처연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이제 힘에 부쳐 산행에 빠지겠다고. 그날 산행 내내 우리 형제는 할 말을 잊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몸으로 삼형제를 키웠고 이제 서서히 쇠잔해 간다. 나는 올해도 냉동실에서 꺼낸 얼음 밥을 먹으며 의아하게 보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속삭인다. 너희에게는 차가운 얼음 밥이지만 내게는 용광로 보다 뜨거운 밥이라고.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 대학원 교수미국 사우스캐롤 라이나대학 박사(매체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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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