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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통일 논의 상식과 순리 따라야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남북관계는 최악의 경색 국면인데 때아닌 통일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12월 9일 말레이시아 교민 간담회에서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더 큰 경제력을 가지고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는 이명박 대통령 발언 이후 더욱 그렇다. 통일부는 아예 올해를 통일준비 원년으로 설정하고 국론 결집을 위한 공론화 작업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다. 통일은 우리의 열망 아닌가.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북의 급변사태, 체제 붕괴, 그리고 흡수 합병’이라는 통일의 경로를 전제로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단일민족국가로서의 통일을 바라지만, 흡수통일이 현실적 대안은 아닌 것 같다.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현 북한 체제가 붕괴한다 해도 주권국가로서의 북한은 존속할 것이다. 집단지도체제, 군부정권, 민주정부든 그 어떤 정치주체가 들어서든 이들과 협상하고, 합의를 구해야 통일이 가능하다. 우리가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할 수 없는 것처럼 북도 흡수통일 방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 점진적 통일방안이 선호되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구상했던 이홍구 전 총리는 “하나의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해 두 정치체제의 공존을 서로 수용하고, 교류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을 통일로 가는 수순으로 보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지향했던 남북연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개의 주권을 당장 하나로 합치는 법적 통일보다는 교류협력, 신뢰구축, 평화공존의 모색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는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먼저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분단, 전쟁, 그리고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겪어 온 남북한이 협력과 통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숨에 단일민족국가로 통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준거로 삼고 있는 독일 통일도 엄밀히 말해 흡수통일이 아닌 합의 통일이다. 1990년 10월 3일 독일통일을 공식 선포하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보자.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서독의 기민·기사당, 사민당, 자민당, 그리고 녹색당 등 정당 사회단체들이 동독의 정당, 사회단체들과 긴밀한 연대를 구축하고 동독 인민회의의 서독 편입 결의와 통일조약 체결을 거쳐 통일을 일구어 낸 것이다. 더구나 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한 이후 서독은 장기간에 걸쳐 동독과 교류·협력을 강화해 왔을 뿐 아니라 통일의 순간까지 총 32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지원을 동독에 해 왔다. 이렇게 보면 독일 통일은 치밀하게 준비된 합의통일이라 할 수 있다.

 통일비용만 해도 그렇다. 통일세 논의의 기폭제가 된 미래기획위원회 보고서는 북한의 급격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 비용을 2525조원으로, 그리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통한 점진적 합의통일 비용을 380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수치만 보아도 흡수통일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아예 “전쟁을 두려워하면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하며 최악의 경우 무력통일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94년 1차 핵 위기 당시 미 국방부는 한반도에 전면전 발생 시 개전 90일 이내에 미군 5200명, 한국군 49만 명, 그리고 민간인 사상자 수는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이 부담해야 할 전쟁비용은 1000억 달러, 한국과 주변국은 1조 달러의 손실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15년 전 추산이 그 정도인데 전쟁비용, 전쟁피해와 복구비용, 그리고 흡수·합병 후 북한 경제의 활성화 비용 등을 모두 합하면 적게 잡아도 그 비용이 6조~7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막대한 인명 손실까지 고려하면 아무리 통일의 편익이 크다 해도 이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전쟁에 따른 지워지지 않은 상흔 때문에 통일 후 사회통합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제 상식과 순리에 따라야 한다. 통일은 우리의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남북 상호합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중한 현실주의 자세로 통일에 앞서 교류협력, 신뢰구축, 그리고 평화공존의 기반을 구축하고 북이 선듯 합의통일에 나설 수 있는 대내외적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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