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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간 비워둔 아버지 비문 이제 써 넣겠다”





조봉암(1898~1959) 52년 만에 ‘간첩죄’ 무죄 선고



조봉암 선생의 맏딸 조호정 여사가 20일 대법원 판결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20일 오후 2시30분 대법원 대법정. 이용훈 대법원장이 재심 무죄 선고를 하는 동안 죽산 조봉암 선생의 맏딸 호정(83)씨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서른한 살 새댁 때 아버지를 형장의 이슬로 떠나 보낸 딸은 어느덧 백발의 할머니가 됐다. 방청객들이 여기저기서 울음을 터뜨렸지만 52년 동안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뛰어다녔던 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재심을 맡았던 최병모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눈물 한 방울 안 흘 려 의외였는데.



 “그동안 워낙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오는 거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집에서 한바탕 울었다. 너무 불안했다.”



 -특별히 불안해할 이유가 있었나.



 “아버님 돌아가시던 날이 떠올라서다. 그날도 면회를 갔었다. 그런데 간수부장이 ‘아버님께서 오늘은 몸이 불편해서 면회를 못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싶어서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니까 이미 (사형 집행이) 끝난 뒤였다. 재심 청구가 기각된 바로 다음 날에···.”



 -이미 사형이 끝난 뒤에 면회를 갔다는 것인가.



 “그렇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던 그때 가족들은 재심 재청구 서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일을 겪었으니 언제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것이다.”



 -처음 기소될 땐 사형 선고까지 생각도 못했을 것 같다.



 “아버님은 체포된 것도 아니다. 자진 출두하셨다. 그런데 곧바로 구금이 되더니 결국···. 정적이라고 그렇게 죽이는 게 아니다.”



 -사형 이후에도 가족들이 고초를 겪었다고 들었다.



 “(경찰 등이) 집 둘레에 새끼줄을 쳐놓고 사람이 드나들지도 못하게 했었다. 망우리 묘소에서 제사도 못 모시게 했다. 기일에 사람들이 묘소로 찾아오면 형사들이 지키고 있다가 그 사람들을 번쩍 들어 차에 실었다. 선거철이면 더 삼엄했다.”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나겠다.



 “지금 당장 우리 1남3녀와 내 딸·사위가 다 함께 망우리로 간다. 우리 아버님 소주 꼭 사다 드려야지. 못난 자식들이 해냈다고 말씀 드릴 거다. 50년간 쓰지 않고 비워둔 아버지의 비문(碑文)을 이제 써 넣겠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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