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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위해 마련한 솜이불 동료에게 … ”





작년 12월 순직한 장복수 소방관 부인 최창숙씨, 49재 치러





“남편 위해 마련한 솜이불 동료에게 … ”



남편이 떠난 지 49일째. 최창숙(42·사진)씨는 아직도 핸드백 속에 카드를 넣고 다닌다. 카드에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사랑한다”고 적혀 있다. 남편이 떠나기 보름 전, 결혼기념일에 맞춰 꽃다발과 함께 건넨 카드다. 최씨의 남편은 고(故) 장복수(사망 당시 42세) 소방장이다. 지난해 12월 3일 한강에 떠오른 시신을 수습하러 나갔다 순직한 서울 광진소방서 수난구조대원이다.



 20일, 49재를 마친 최씨는 “남편이 순직한 건 어쩌면 피하기 어려웠던 일”이라고 말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곳도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던 장애인복지시설이었다. 남편 역시 봉사활동을 하러 나왔다. 최씨는 “‘소방관은 위험한 직업’이라며 결혼을 반대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어려운 사람을 보면 모른 채 못하던 그 모습이 듬직했다”고 했다.









고 장복수 소방장(맨 왼쪽)이 2010년 7월 강원도 영월에서 동료들과 함께 인명구조훈련을 받고 있다.



 사고가 나던 날 남편은 고무보트를 타고 나갔다. 겨울 강은 바람이 사납다. 그래서 철선을 타야 한다. 선체가 무거워 바람에 뒤집힐 염려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고무보트를 택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신을 수습하고 싶었으리라. 고무보트는 결국 뒤집혔다. 남편의 시신은 6시간 만에 수습됐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에 비하면 내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남편의 삼우제를 지내고 충북 음성에 사는 시어머니를 찾아간 적이 있다. 시어머니는 전화번호부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어멈아, 이거 아범이 써 준 거다. 내 눈 어둡다고 잘 보이라고 매직으로 크게 써 줬어.” 시어머니를 안고 한참을 울던 최씨가 말했다. “어머니, 아범은 남을 위해 먼저 간 거잖아요. 우리도 자랑스럽게 보내 줘요.”



 두 딸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해 줬다. 한번은 둘째가 “왜 아빠는 내가 여덟 살 때 하늘나라에 갔어? 언니랑은 열 살 때까지 놀아 주고”라며 투정을 부렸다. “대신 아빠가 두발자전거 타는 법 가르쳐 줬지? 아빠처럼 혼자서도 잘해야지. 아빠는 좋은 일을 하다 떠나신 거잖아”라고 다독여 줬다. “사실 스스로한테 한 말이었다”고 최씨는 말했다.



얼마 전 최씨는 솜이불 한 채를 들고 남편이 근무하던 광진소방서를 찾았다. 유난히 추위를 타던 남편이었다. 지난해 10월부터 “너무 춥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남편을 위해 마련한 솜이불인데 “차를 몰고 출근하는 날 가지고 가겠다”며 미루다 끝내 덮어 보지 못했다. 남편은 없지만 동료들이 이불을 덮을 때마다 남편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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