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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작가 강경애의 ‘원고료 200원’







강경애가 스케치한 자화상(『여성』 1939.11). 강경애는 그녀의 문학적 재능에 비해 뒤늦게 그리고 아직 불충분하게 인정받은 여성 소설가다. 38세의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이기도하고, 그녀의 소설이 지닌 저항적 성격 때문에 일제의 검열을 받은 탓도 있으며, 그녀가 조선 땅이 아닌 간도에서 주로 활동한것도 한 이유가 되었다.



1930년대의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인간문제’(『동아일보』 1934. 8. 1~12. 22)의 작가 강경애(姜敬愛·1906~43)는 이 소설 연재가 끝난 직후 ‘원고료 이백 원’(『신가정』 1935. 2)이라는 그녀의 자전적인 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그녀가 ‘인간문제’의 원고료로 200여원을 받게 되면서 일어난 일을 여학교 졸업을 앞둔 한 후배 K에게 이야기하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강경애는 평양 숭의여학교를 형부의 도움으로 겨우 다닐 수 있었지만, 때때로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도 눈칫밥을 먹는 신세였다. 보통 넉넉한 형편의 아이들이 다니는 여학교에서 학용품 살 돈도 없어 남의 것을 빌려 써야 했던 그녀는 비싼 옷, 화려한 장신구를 지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녀가 작가로서 굴지의 신문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는 유명인사가 되고, 원고료로 꽤 큰 돈도 받게 되었으니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뿐 아니라 간도 용정에서 남편 장하일과 생활하고 있던 당시까지도 강경애의 살림은 여전히 궁핍했다. 그래서 그동안 살 수 없었던 털외투, 목도리, 구두, 금반지, 시계 등을 이 돈으로 살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항일 무장투쟁단체와 연계돼 있던 남편은 원고료를 항일운동을 하는 동지들을 돕는 데 쓰자고 한다. 강경애 또한 돈이 생기면 딱한 처지에 있는 동지들과 그 가족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해 왔던 터였다. 하지만 막상 난생 처음으로 큰돈을 갖게 되자 자신을 위해 한번 소비해 보고 싶어진 아낙네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난 그런 일류 문인의 사내 될 자격은 못 가졌다. 머리를 지지고 볶고, 상판에 밀가루 칠을 하고, 금시계에 금강석 반지에 털외투를 입고, 입으로만 아! 무산자여 하고 부르짖는 그런 문인이 되고 싶단 말이지. 당장 나가라!” 그녀는 결국 자신의 허영심이 부끄러워져서 남편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자신의 원고료를 동지들을 돕는 데 내놓는다. 이 일화를 후배 K에게 전하면서 강경애는 졸업을 하게 되면 ‘너의 사회적 가치를 향상시킴에 힘써야 한다. 이 사회적 가치를 떠난 그야말로 교환가치를 향상시킴에만 몰두한다면 너는 낙오자요 퇴패자다’라고 당부한다.



 ‘연말정산 시즌’이다. 연말정산을 하다 보면 자신의 1년치 삶의 내역이 금액으로 환산돼어 나온다. 그중에 ‘사회적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지출액은 얼마나 될까? ‘입으로만 아! 무산자여’를 외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겠다. 일단 이 글을 쓰는 나부터.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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