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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을 치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멸치를 다듬으며 월드 시리즈를 본다. 콩나물을 사려면 9시 반이 돼야 한다.’



 사내는 지난해 10월 31일 오전 8시27분 트위터에 이런 멘션(트위터에 올리는 140자 한도의 글)을 날렸다. 11월 1일 밤, 자취방을 찾은 동료가 콩나물국을 끓이려다 쓰러진 그를 발견했다. 뇌경색이었다. 멘션 남긴 시각으로 쓰러진 때를 가늠했다. 방치된 지 36시간. 친구들은 가슴을 쳤다. 아프고 찌질한 ‘보통의 삶’을 진심 어린 목소리로 노래한 가수, 음악만큼 야구를 사랑했던 서른일곱 독거남. 인디 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 얘기다.



 쓰러진 엿새 뒤 그는 숨을 거뒀다. 벌써 두 달 보름 전 일이다. 연봉 1000만원이 꿈이던, 뭘로 보나 ‘루저’에 가까웠던 한 사내를 잊기엔 충분한 기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달빛요정은 더 커지고 힘이 세졌다. 27일 그를 추모하는 공연 ‘나는 행운아’가 홍대 인근 클럽 26곳에서 열린다. 인기스타부터 제주도 직장인 밴드까지 무려 103개 팀이 노개런티로 참여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작가는 “규모와 방식만 보자면 한국 음악계를 대표했던 이에게 바치는 공연 같다”고 했다. “트위터가 호외 역할을 한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달빛요정은 직장생활을 하다 서른 다 된 나이에 가수가 됐다. 펑크도 모던 록도 아닌 자기만의 음악을 하던 그에겐 홍대 클럽마저 높은 문턱이었다. 작곡부터 포장까지 가내수공으로 음반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달빛요정 음반은 담배 냄새 밴 게 오리지널”이란 얘기가 진담처럼 떠돌았다. 그의 음악을 반긴 건 뜻밖에도 20~40대 남자들이었다. 그래서일 게다. 20대보다 30, 40대 비중이 높은 트위터에서 유독 그의 존재가 우뚝한 건.



 그의 의식불명 뉴스도, 사망 사실도 트위터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열혈 팬이던 몇몇 트위터리안(트위터 사용자)들의 ‘광폭 리트윗(타인의 멘션을 퍼뜨리는 것)’이 이어졌다. 남해 섬마을 소년부터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까지 트위터를 통해 그를 재발견했다. 추모공연 소식 역시 트위터를 타고 빠르게 번졌다. 밴드들은 온라인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자원봉사자 모집 멘션을 내자 한나절 만에 300여 명이 몰렸다. 공연이 다가 아니다. 19일 홍대 앞 상상마당에선 ‘한국 인디음악과 디지털 음악저작권’ 토론회가 열렸다. 생전 그를 치킨배달부로, 라면이 더 익숙한 삶으로 내몰았던 우리나라의 왜곡된 음원 유통구조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이 또한 그의 고독한 죽음을 계기로 수많은 네티즌이 공론을 벌인 결과다.



 그는 생전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끝없이 패전 처리를 반복해온 인생에도 언젠가는 텍사스 안타(빗맞아 터진 행운의 안타) 한번쯤은 찾아올 것을 믿는다’고. 9회 말 투 아웃 상황, 그는 정말 역전 만루홈런을 쳤다. 경기는 끝나고 운동장 불도 꺼졌지만 홈런볼은 중력 법칙을 벗어나 여전히 날고 있다. 인류의 새로운 소통 도구, 트위터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따뜻한 기적이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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