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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프트파워로 등장한 역사

김명호 교수의 중국 근현대 이야기는 중앙SUNDAY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재물 중 하나다. 이번 주로 200회를 맞았다. 장장 4년 가까운 세월이다. 그래도 지루하다는 독자는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듣도 보도 못한 얘기들이 매번 나오기 때문이다. 대륙에서 벌어졌던 권력다툼,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정상을 향해 달려간 인간들의 삶과 죽음. 그 자체가 가슴 서늘한 드라마임과 동시에 현대 중국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 유전자 지도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은 더 이상 중국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됐다. ‘아시아의 병자(病者)’가 된 중국이 열강들에 의해 만신창이가 됐기 때문이다. 수천 년 만의 해방이었다. 공산혁명과 함께 마오쩌둥(毛澤東)의 죽(竹)의 장막이 내려지면서 중국과 중국인은 한국인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그런 세월이 오래 이어졌다.

1992년 한·중 수교와 함께 대륙의 빗장이 열렸을 때 한국인은 거의 한 세기 만에 중국 땅을 밟았다. 그들은 의기양양했다. 중국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열린 대륙의 현실은 한심했다. 특히 경제가 그랬다. 당시 국내에선 “100만원만 가지고 중국 가면 황제처럼 몇 달 산다”는 졸부들의 허세가 페스트처럼 퍼졌다. 하지만 수천 년 역사 가운데 그때, 딱 10여 년 정도였다. 한국이 중국을 우습게 알면서 살았던 시기 말이다.

요즘엔 정신 번쩍 든다. 너나 없이 중국을 알자고 몸이 단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중국을 안단 말인가. 김명호 교수의 중국 근현대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는 건 그래서일 게다. 장막 속에 있던,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린, 그 90여 년을 복원해 내야 비로소 ‘중국의 지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요즘 한 술 더 뜬다. 지난 11일 천안문광장 동쪽에는 높이가 9.5m나 되는 대형 공자 동상이 세워졌다. 높이가 6m인 마오쩌둥의 초상화보다 더 크다.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공자 동상을 찾아다니며 때려부수고 사당을 불살랐다. 충효사상과 가부장질서를 세운 보수의 원조로 비판받던 공자는 80년대 말 부활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89년 산둥(山東)성 취푸(曲阜) 공자묘에서 열린 공자 탄신 2540주년 행사 때 한국 성균관대 유생들을 초청했다. 제사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거였다. 그로부터 얼마 안 돼 중국은 공자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78개 국가에 공자학원 300곳을 세웠다. 중국이 수천 년 전부터 아시아인들의 정신을 지배한 문명국가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앞세워 다른 나라의 거부감을 희석시키며 파고드는 새 전략이다. 역사는 교과서에서 뛰어나와 현실의 힘으로 등장했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아무리 애써도 가질 수 없는 새로운 부류의 소프트파워다.

한국에선 정반대로 상황이 전개됐다. 역사는 교육에서 사라졌다. 세계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세계화는 정신의 노예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보수(保守)는 뭔가를 보존하고(保), 지킨다(守)는 뜻이다. 한국의 보수는 그 핵심이 역사라는 걸 몰랐다. 요즘 많은 국민에게 보수는 자신들의 권리와 기득권만 보존하고 지키려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역사의 메인 스트림(main stream), 소중히 보듬어야 할 공동체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린 차가운 대가다. 지켜야 할 정체성, 보존해야 할 역사가 사라진 자리를 좌파 진영의 자기부정적, 자학적 역사관이 파고들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건 둘 다 할아버지의 자손이란 사실이다. 가치관이 다른 아버지와 아들 세대를 엮어줄 공감의 끈은 무엇일까. 할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수천 년 문화민족이라는, 우리에게 남겨진 엄청난 자산을 이대로 내팽겨쳐선 안 된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자. 역사는 지금 우리가 고통스레 겪고있는 수많은 질환의 치료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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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