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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동의 아니다, 난 포퓰리즘과 싸운 노하우 있어”

여권이 들썩이고 있다. 대선 정국에 변화와 경쟁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복지’를 앞세우며 본격적으로 몸풀기에 나섰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제안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한나라당 내 예비 주자군으로 꼽히는 김문수(60·사진) 경기도지사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경기도는 지난 연말 예산안 심의 때 민주당이 다수당인 도의회와 ‘빅딜’을 했다. 당장 전면 무상급식을 하지 않는 대신 친환경 급식 예산을 58억원에서 400억원으로 증액한 것이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초등학교 50% 선에서 무상급식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대신 김 지사의 핵심사업 예산을 확보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무상급식 문제로 시의회와 전면 대결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와 대조적이다.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김 지사를 만났다.

서울시 주민투표 간단치 않을 것
-무상급식 논란이 뜨겁다. 김 지사가 무상급식에 대해 도 의회와 타협한 건가.
“그렇지 않다. 우린 무차별 무상급식에 동의한 게 아니라 친환경 급식 확대를 위한 예산을 늘렸을 뿐이다. 친환경 급식은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면서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어려움을 겪는 도내 농·축산 농가를 도울 수 있는 일석이조 사업이다.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우수 농·축산품의 안정적인 공급처를 학교급식을 통해 확보해 주겠다는 취지다.”

-일각에선 김 지사가 오 시장과 차별화 전략을 쓴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무상급식은 서울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라 (재선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작품이다. 우린 1년반 동안 싸워서 그나마 이만큼 결론이 난 거다. 서울은 싸운 지 6개월밖에 안 됐잖나. 아직 우리만큼 전쟁 노하우가 없는 거지, 허허. 당시엔 도지사도, 의회의 3분의2도 한나라당이었지만 교육감 한 명과 싸우는 게 무지 어려웠다. 포퓰리즘이 그만큼 무서운 거다.”

-무상급식 자체엔 찬성하나.
“지금도 사실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26%쯤 될까. 이걸 얼마나 점진적으로 확대시켜 가느냐의 문제인데, 저 사람들은 당장 한꺼번에 다 하자는 거 아니냐. 문제는 재정이다. 복지는 다다익선이다. 재정만 허락하면 무상급식, 무상과외 다 좋다. 그런데 그 돈을 누가 부담할 거냐. 경기도는 서울시보다 학생이 50%가량 많지만 예산은 70%에 불과하다. 경기도와 서울시의 현실이 다르다. 세금이 안 걷혀 기존 예산도 3500억원이나 깎아야 할 판인데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논리로 의회를 설득했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까지 제안했다. 그의 승부수가 통할 거라고 보나.
“(잠시 말을 멈춘 뒤) 우리도 주민투표를 많이 해봤는데 결코 간단한 게 아니더라. 광역화장장 문제를 둘러싼 주민소환투표도 숱한 논란을 불렀지만 결국엔 무산됐다. 굉장히 잘 해야 할 거다.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졌는데 누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그저 잘되길 바랄 뿐이다.”

-오 시장이 무상급식과의 전면전을 선언한 데 대해 여당 내에서도 신중한 입장이 적잖다. 오 시장 행보 자체가 또 다른 포퓰리즘이란 지적도 나온다.
“투사로서 본인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시키겠다는 측면에선 일단 성공적으로 봐야 하지 않겠나. 다만 경기도는 할 일이 너무 많다. 경기도가 의회와 파국을 맞으면 도민들 피해가 너무 크다. 서울이야 이미 완성된 도시니까 파행이 되더라도 별 지장이 없다. 오 시장도 그리 판단했으니까 치고 나온 게 아니겠나.”

복지 해법은 책상에서 나오지 않아
-‘박근혜식 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방향은 좋은데 이제 겨우 복지기본법만 발표한 것 아닌가. 아직 하나의 방향일 뿐이다. 하지만 복지는 실행이다. 뭐가 문제인지는 누구나 알지만 실제 해결해낼 수 있는 솔루션을 내놓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박 전 대표가 경영학 개론 정도를 얘기했다면 경기도는 이미 무한돌봄사업과 꿈나무안심학교라는 실질적 성과를 내고 있다.”

-박 전 대표도 나름의 해법을 내놓지 않겠나. 내로라하는 학자도 많고.
“그거, 못 만들 거다. 그냥 쉽게 되는 게 아니다. 복지는 현실이다. 유럽과 미국·일본의 복지를 전공했어도 한국의 복지는 전혀 다르다. 노숙자 문제만 해도 한 명 한 명 사례연구를 통해 맞춤형·현장형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민·관, 기독교·불교·천주교, 의사·약사·보건소 등을 모두 통합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오히려 이론적으론 정리가 덜 됐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론 가장 앞선 제도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정부도 이를 벤치마킹한 것 아니겠나. 복지는 예산만 확보하고 법과 제도를 고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나.
“내 자신이 어릴 때부터 밥을 못 먹고 자란 사람이다. 결식아동이었고, 죽만 먹어 죽식아동이었다. 청계천에서 노동빈민운동까지 내 청춘도 쫓기는 삶의 연속이었다. 좌파란 게 그런 거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주변의 어려운 사정을 속속들이 안다. 한나라당에서 결식아동 학교급식 제도를 처음 도입한 사람도 나다. 1996년 국회의원이 된 뒤 회의를 하는데 공무원들이 ‘어떻게 정부 예산으로 애들 밥을 다 먹이냐’고 해서 내가 막 집어던지며 엄청 싸우다가 성질 더러운 놈으로 찍혔다(웃음).
지난해 성탄절 전야에도 나는 의정부역에서 노숙자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복지 해법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지 학자들 책상에서, 책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선 절대 풀 수 없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해서는. 이회창·이인제·고건 대세론이 다 무너졌는데.
“박근혜…. 뭐 지금 대세죠. 지금은 대세죠. 매우 인기가 높은 분이고. 된다, 안 된다 이런 말은 내가 못하죠.”

-친이계 단일 주자의 유력후보 중 한 명인데 박 전 대표가 끝까지 잘 가면 그냥 오케이고, 안 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는 건가.
“그것보다는 조금 다르겠지, 허허. 대선쯤 되면 본인이 발버둥치거나 강한 의지를 내비치는 것과는 무관하게 국민의 민심, 시대의 정신, 역사의 부름, 뭐 이런 것 아니겠나.”

야당 인사라도 대북 전문가 폭넓게 써야
-지난해 안보 문제에 대해 강성발언을 계속하면서도 북한에 밀가루 300t을 지원했다. 괴리가 있는 것 아닌가.
“(단호한 목소리로) 투 트랙이다. 국방·안보라는 트랙과 북한주민에 대한 지원·교류협력은 전혀 다르다. 내 기본시각은 헌법대로다. 헌법 제3조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돼있다. 북한땅도 우리 영토고 북한주민은 우리 국민이다. 탈북자에겐 임대주택과 정착금을 주면서 북에 남아있으면 전혀 안 줘도 되나. 나는 그렇게 안 본다. 북한주민들을 따뜻하게, 가능한 한 충분히 도와드리는 게 대한민국 정부의 헌법적 책무다. 그런 점에서 남는 쌀을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은 인도적 차원에서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투 트랙으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당장 대북 전문가를 적극 중용해야 한다. 과거 10년간 우리와 다른 정권 쪽에 서있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가려선 안 된다. 전문가라면 야당 인사라도 최대한 폭넓게 써야 한다. 그래야 성과가 나온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솔직히 외교 전문가 아닌가. 북한 문제를 풀려면 베스트를 뽑아서 즉시 실력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내가 좌파였기 때문에, 주사파가 뭐고 북한체제의 본질이 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감히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지난해 외부강연을 다니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많이 했는데.
“꼭 하고 싶은 얘기는 보금자리주택 문제다. 40년간 묶어놓은 그린벨트를 헐어 싸구려 서민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건데, 이건 분당·일산 같은 베드타운보다 급이 더 낮아진 거다. 이래선 안 된다. 일자리 하나 없는 과천에 서민임대주택을 지으면 뭐하나. 결국 남태령 넘어가는 것밖에 살 길이 없다. 신도시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120만 평에 달하는 평택 고덕 산업단지 입주협약을 맺었는데 돈이 남는 아파트만 짓겠다는 정부를 설득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다른 정책은 거품처럼, 파도처럼 사라질 수 있지만 도시정책은 100년 가는 거다. 일자리 없는 신도시는 죽은 도시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인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무엇보다 타이밍을 놓친다. 문화부와 지식경제부 장관 인선도 너무 늦지 않았나. 또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써야 한다. 편한 사람 위주로 쓰지 말고.”

이재오와 스파게티 양념에 밥 비벼 먹어
-가장 좌파에서 가장 우파로 전향했는데, 후회는 없나.
“후회? 허허. 조문도(朝聞道)면 석사가의(夕死可矣)라고,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이 있다. 인생이란 게 구도의 과정 아니겠나. ‘이게 뭐꼬’라는 보따리를 짊어지고 길을 나선 수도자의 자세. 옳다고 믿는 길에 모든 삶을 바치는 게 가장 아름답다고 늘 생각한다.”

-그럼 민중당은 잘못된 당이었나. 아니면 그땐 불가피했다고 보는 건가.
“지금의 노동당이나 민주노동당 비슷한 거지(잠시 침묵). 소련의 멸망, 동구권의 몰락,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재오 특임장관과 늘 함께했는데.
“96년 초선의원 시절 국회의원 단체모임 때 레스토랑에 갔는데 스파게티가 나오자 둘 다 비빔국수 먹듯 말아먹고 공기밥까지 주문해 남은 양념에 비벼 먹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타고난 동지가 맞는 것 같다(웃음).”

-왜 정치를 하려고 했나.
“나는 혁명가다. 그런데 좌절하는 과정에서 보니 가장 가까운 게 정치더라. 좌절한 혁명가의 변신이랄까.”

-아직도 혁명을 꿈꾸나.
“혁명이란 게 뭐냐. 현실에 비해 높은 이상을 꿈꾸고 그걸 빨리 달성하려는 것 아니겠나. 나쁘게 말하면 조급증이고, 좋게 말하면 열정이고. 더 낮은 곳으로, 더 뜨겁게. 이게 내 삶이자 꿈이다. 올해가 환갑 토끼띠인데, 남은 꿈이 있다면 대한민국이 통일강국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통일무용론을 얘기하는 우파는 진정한 우파가 아니다.”

-도지사로 만족하나.
“이 정도면 개인적으론 많은 걸 이뤘다고 본다. 어릴 적 꿈이 쌀밥 실컷 먹는 거였는데, 꿈을 100% 이상 이룬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지방정부는 사실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반면 중앙정치는 너무 고칠 게 많다. 그런 점에서 아직 만족하기보다는 여전히 상당한 의욕을 갖게 만드는 정치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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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