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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과 크리스티나

영하 13도의 한파가 불어닥친 그날 밤 9시 반. 마을 끝 버려진 슬레이트 지붕 폐가에 둥지를 튼 소녀는 너무도 춥고 무서웠다. 조금 전까지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폐가의 구석방에 혼자 남았다. 라면박스 위 종이컵에 올려놓은 촛불 2개로는 추위도 무서움도 떨치기 어려웠다. 박스 위에 촛불 2개를 더했다. 밀려드는 한기를 피하기 위해 바닥엔 종이박스를, 그 위엔 다시 매트리스를 깔고 이불을 3채나 덮었다. 소녀는 눈앞에 가물거리는 촛불 4개를 보면서 잠이 들었다.

두 시간 뒤인 11시30분, 폐가에 불이 났다. 소방차가 달려와 30분 만에 불을 껐다. 잔불을 정리하던 소방대원은 방안에서 까맣게 그을린 채 숨진 소녀의 시신을 발견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평리 칠보산 자락 아래 마을 폐가에서 발생한 화재 얘기다. 화재 현장의 소녀는 13살 최모양. 3월이면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갈 아이였다.

최양은 지난해 11월 집을 나와 이곳저곳을 전전해 왔다. 돈이 생기면 찜질방이나 PC방을 찾았지만, 최근엔 그나마도 돈이 떨어져 원평리 마을 폐가로 숨어들었다. 엄마는 5년 전 이혼해서 집을 나갔다. 아빠는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줄 수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최양은 지난해 7월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다툼도 잦아졌다. 지난해 11월 그날도 아빠의 꾸지람을 참지 못해 욱하는 마음에 그만 집을 나와버렸다.

그래도 집이 그리웠을까. 아님 세상이 무서웠을까. 가출한 아이는 집을 멀리 떠나지 못했다. 최양이 추위와 무서움에 떨며 잠이 들었던 그 폐가는 아빠가 있는 집에서 불과 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한겨울 집을 떠난 13살 소녀에게 아빠도 학교도 이웃도 아무도 손을 뻗지 못했다. 7월 이후 수시로 며칠씩 집을 비우는 딸이었기에 아빠는 가출신고를 하지 않았다. 막내딸도 보살펴야 했고, 직장도 있었기에 가출한 딸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설 수도 없었다. 최양은 지난해 2학기 들어 수시로 결석을 했지만, 학교는 결국 그런 최양을 바로잡지 못했다. 겨울 방학이 되면서 자연스레 학교와 멀어졌다. 불이 난 폐가의 이웃 주민들도 소녀를 품지 못했다.

영하 12도의 한파가 이어진 15일 이른 아침. 소녀는 외롭고 무서운 세상과 영원한 이별식을 치렀다. 소녀를 위한 빈소는 없었다. 병원 영안실 시신보관용 냉장실에 머물다 화장터인 수원 연화장으로 떠나 한 줌 재로 변했다. 그녀의 소식은 불이 난 다음날 일부 신문과 TV에 단신 처리된 게 전부였다.

지난 12일 미국에서는 9살 소녀 크리스티나 테일러의 장례식이 있었다. 나흘 전 애리조나주 투손의 한 대형 수퍼마켓 앞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6명 중 최연소자였다. 온 국민이 크리스티나의 장례식을 TV 중계로 지켜보며 애도를 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51초의 침묵’을 보탠 추모 연설을 했다. “나는 우리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는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최양이 한파 속 불구덩이에서 숨진 지 6일째인 오늘만이라도 우리의 13살 소녀를 위해 마음을 모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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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