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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건 겁 안 난다, 날 보여주지 못할까 두려울 뿐”

김동현(위)이 지난 2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UFC 125’ 웰터급 경기에서 네이트 디아스에게 레슬링 기술을 걸고 있다. 김동현은 3-0 심판 전원 일치 판정으로 이겨 UFC 5연승을 기록했다. [라스베이거스 AP=연합뉴스]
중앙일보 편집국 행정팀에서 일하는 이태경(33)씨는 2002~2003 프로복싱 신인왕전 미들급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복서다. 그는 2005년 겨울, 딱 한 차례 종합격투기 링에 오른 적이 있다.
“상대는 일본에서 격투기를 뛴 적이 있는 선수였어요. 제가 주먹에는 자신 있어 ‘한 방만 걸려라’ 하고 얼굴을 숙인 채 훅을 날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뻑’ 소리와 함께 상대 니킥(무릎 공격)이 제 얼굴에 명중한 겁니다.”

글러브 낀 주먹에 맞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이씨는 비틀거리며 로프에 몸을 기댔다. 다행히 공이 울려 KO패는 면했다. 하지만 왼쪽 눈이 금세 퉁퉁 부어 올랐고, 닥터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서두원
“이기면 받는 40만원(지면 10만원)으로 양복 한 벌 해 입으려 했어요. 근데 병원비만 200만원 깨졌어요.”

이씨는 당시 상황을 리얼한 액션을 곁들여 신명 나게 설명했다. 그렇게 무참히 깨지고도 격투기가 주는 묘한 흥분과 쾌감을 잊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승윤
종합격투기가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댕기고 있다. ‘강한 남자를 향한 로망’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진통제 값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이 남자들은 왜 피가 터지고 팔이 꺾이는 실전에 뛰어들까. ‘폭력을 조장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왜 격투기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날까. 스포츠 오디세이는 이 질문을 안고 국내 격투기 선수 세 사람을 만났다. 전 세계 ‘극강 파이터’들이 모이는 종합격투기 UFC에서 5연승을 달리고 있는 김동현(30), 지난해 TV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합창단 편’에서 순수한 모습으로 주목받은 국내 챔피언 서두원(30), 지난해 10월 종합격투기에 도전했던 개그맨 이승윤(31)이다.

두려움 “라커룸선 가슴 터질 듯한 초조감”
김동현에게 경기를 앞둔 심정과 라커룸의 분위기에 대해 물었다.
“다들 강한 척, 자신 있는 척하지만 누구나 라커룸에서는 긴장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초조해 어쩔 줄 모르는 선수, 혼잣말을 중얼중얼하는 선수, 동료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선수 등 각양각색이다.”

김동현도 경기 직전에는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도망치고 싶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싶을 정도의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은 아니다. 오히려 ‘콘서트장을 꽉 채운 관객 앞에서 노래를 시작하는 가수의 심정’이라고 했다.

김동현은 “사실 맞는 데 대한 공포는 없다. 그런 공포를 갖는 선수라면 케이지(cage·격투기 경기장)에 오를 자격조차 없다. 실전에서는 맞아도 아픈 줄 모른다. 그냥 뭔가 거치적거리는 느낌 정도”라고 했다. 그는 “내가 준비한 걸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면 어떡하나, 나를 보러 온 이 많은 관중 앞에 실망스러운 경기를 보여 주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가수가 노래 부르다가 가사를 까먹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같은 것”이라고 했다.

서두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지금까지 15전을 하면서 어깨 인대, 코뼈, 갈비뼈, 손목뼈 등 안 다쳐 본 데가 없을 정도다. 수술만 다섯 번을 했다. 손뼈가 부러진 걸 알면서도 끝까지 경기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뭐가 두려운 걸까. “내 생각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 결과가 나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다. 이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지면 다음에는 다시 오를 수 없는데, 그럼 내 직업을 잃어버리고, 내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건데…. 하지만 막상 시합장에 서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공이 울리면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경기에 몰두한다.”
이승윤도 “긴장은 했지만 맞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없었다. 크게 다치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도 없었다. 크게 다치는 건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해당하는 건데 난 2개월 동안 하루 8시간씩 훈련을 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쾌감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종합격투기 선수가 느끼는 쾌감은 어떤 것일까. 주먹이 상대 안면에 적중할 때 전해지는 짜릿한 손맛일까, 아니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한 뒤 맞는 정복감일까.

김동현은 그런 종류가 아니라 성취감이라고 했다. “이건 싸움이 아니라 경기요, 퍼포먼스다. 내가 준비한 걸 다 보여 주고 이겼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낀다.”

김동현에게 왜 격투기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돈이나 명예욕은 다음다음 문제다. 내가 그냥 그렇게, 격투기를 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고교 때 처음 종합격투기 경기를 보고 나서 ‘나는 저걸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끌렸다. 나는 조선시대 무사(武士)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고 믿고 싶다. 격투기를 가르쳐 주신 스승이 ‘천성(天性)에 따르고 천직(天職)에 목숨 걸어라. 그게 천명(天命)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목숨 걸고 했다.”

서두원에게 격투기가 주는 쾌감은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어릴 적 남의집살이를 하며 눈칫밥을 먹고 살았다. 경기가 끝나고 내 손이 올라갈 때, 나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연호하고 날 부러워한다. 그 순간 20여 년 힘들게 산 게 보상받는 느낌이다. 그 자체가 최고의 쾌감이다.”

서두원은 3년 전까지만 해도 격투기 선수로 뛰면서 주말에 막노동을 했다. 일당 6만원에서 6000원을 떼고 토·일요일 합쳐 10만8000원을 손에 쥐었다. 그걸로 한 주간 살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링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나와 가족을 위해서다. 비좁은 집이지만 가족이 함께 살게 됐는데 이 작은 행복을 지키기 위해 뛰어야 한다”고 했다.

어릴 적 꿈이 프로레슬러였다는 이승윤은 경기장을 밟는 순간 감전된 듯 찌릿찌릿한 느낌이 왔다고 한다. “드디어 그렇게 동경하던 무대에 내가 섰구나, 이건 장난이 아니다,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는 여기서 누가 강한지 겨뤄 보자, 이런 원초적 느낌이 좋았다.”

폭력성 “깡패 미화하는 영화부터 막아야”
이들은 “종합격투기에 대한 인식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격투기를 향한 부정적 목소리는 여전히 크고 완강하다. ‘격투기가 좋아 직접 경기장을 찾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TV로 중계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격투기는 청소년에게 폭력을 조장하거나 최소한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지도록 만든다’. 이게 격투기 확산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김동현은 “격투기는 룰과 심판이 있는 스포츠다. 경기 전에 철저히 신체검사를 해 문제 있는 사람은 케이지에 오를 수 없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다시 검사를 해 의사가 메디컬 서스펜션(일정 기간 안에는 경기를 못 뛴다고 판정하는 것)을 내린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를 하려면 깡패를 영웅시하는 조폭영화부터 막아야 한다. 그들은 룰도 심판도 없이 살상무기를 들고 싸우고 비열하게 배신한다”고 말했다.

서두원은 “아무 배경 설명도 없이 싸우는 것만 보여 주면 안 된다. 이 경기를 위해 선수들이 어떻게 준비했고, 어떤 룰로 경기가 치러지는지 충분히 알려 줘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최근에는 격투기 선수가 연예계로 진출하거나 TV 프로그램에서 격투기 선수들의 출연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승윤은 “현대사회에서 ‘남성다움=마초’의 등식이 생기면서 남성성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남자는 본능적으로 강해지고 싶고, 강한 남성을 동경한다. 그게 격투기 선수가 조명받는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취재하기 전 스포츠 오디세이가 세운 가설은 이랬다. ‘격투기 선수들은 맞고 다치는 데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있다. 하지만 그 공포보다 상대를 제압하는 데서 얻는 쾌감이 더 크기 때문에 링에 오른다’.

그러나 가설은 여지없이 깨졌다. 다시 세운 가설은 이렇다. ‘격투기 선수들은 맞는 걸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단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격투기를 사랑하고 여기에 전 존재를 건다. 그래서 그들은 순수하다’.

격투기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김동현이 대답했다. “돈 벌려고, 이름 날리려고, 겉멋에 취해 덤벼드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일주일 버티는 걸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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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