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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덩이에 2400마리 생매장 돼지 몰아넣을 때 너무 괴로워”

11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연라리 돼지농장. 군청을 떠난 지 30분 만에 우리 11명(공무원·산불진화대원 등)이 현장에 도착했다. 돼지농장 입구에서 방제복과 장화·털모자로 갈아입었다. 포클레인이 구덩이를 파느라 바쁘다. 구덩이는 가로 6~7m, 세로 20m에 깊이 7~8m로 반듯하게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장사(葬事)를 치를 때 어른들 어깨 너머로 봤던 깊은 구덩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른들은 산자락의 묏자리를 명당이라고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도 산의 품에 안겨 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아무도 그걸 명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정오쯤 구덩이 옆 흙 바닥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열었다. 내키지 않지만 밤새 일하려면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 “무덤 옆에서 살겠다고 밥이나 먹는 게 어디예요. 쟤들은 아침밥이라도 먹었나 모르겠네.” 양재홍 실무관이 축사를 힐끗 바라보곤 밥을 한 술 떠서 구덩이에 던진다. 강추위를 잊기 위해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고 나니 낮 12시30분. 작업조 11명이 모두 달라붙어 구덩이 바닥에 비닐 위로 두툼한 방수포장재를 씌우는 작업을 했다. 침출수를 막기 위해서다.

이어 포클레인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방수포장재 위로 흙을 덮는다. 돼지 사체에서 나오는 가스를 배출하기 위해 환기통도 두 개 세웠다. 다시 포클레인이 대형 석회포대를 걸고 구덩이 안에 들어온다. 포클레인은 팔을 좌우로 흔들며 생석회의 뽀얀 가루를 안개처럼 흩뿌린다.

잠시 쉬는 동안 옆에 있는 산불진화대 안상옥(61) 반장이 연방 하품을 한다. 안 반장은 오늘로 세 번째 매몰 작업에 나왔다. 어제도 새벽 1시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침에 부리나케 다시 나왔다.

오후 2시30분. 돼지몰이가 시작됐다. 돼지우리에서 구덩이까지는 30여m다. 제 운명을 모르는 녀석들은 ‘훠어이, 훠어이’ 하는 소리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울타리를 따라 구덩이 쪽으로 다가선다. 이날 매몰할 돼지는 중돈(中豚)과 자돈(仔豚)이 대부분이라 전날보다 수월한 편이다. 어제는 우리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소리를 꽥꽥 질러대며 꼼짝달싹하지 않는 고집 센 녀석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한 번에 20~30마리의 돼지를 구덩이까지 몰아오면 포클레인이 구덩이 안에 밀어 넣는다. 보통 1000마리가 넘는 돼지의 숨을 일일이 끊어 매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돼지는 소와 달리 산 채로 묻는다.

그 위를 흙으로 덮고 생석회를 뿌린 다음 비닐과 방수포장재로 덮는다. 다시 흙을 뿌리고 생석회를 뿌려주면 작업이 마무리된다. 흙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돼지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거대한 ‘평무덤’이 완성되면서 울음소리가 그쳤다. 이날 우리 작업조는 2400마리의 돼지와 이별했다. 전날까지 합치면 5400마리다.

매몰 작업 동안 작업조의 일부는 돼지우리에서 돈분을 치우고 생석회 가루를 살포한다. 이때 마스크와 보안경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생석회가루가 얼굴에 닿으면 화끈거리고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작업은 12일 새벽 1시에 끝났다. 방제복과 모자·장화를 모두 벗어 불에 태웠다. 탈의실은 따로 없다. 칼바람을 맞으며 속옷을 갈아입고 전신소독을 한 뒤 목욕탕으로 향한다. 온몸을 깨끗이 씻어도 돼지냄새는 며칠씩 간다. 냄새보다 더 한 것은 돼지의 ‘꽥꽥’거리는 울음 소리다. 이전에 두 번 매몰작업을 한 후에도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환청과 식욕 부진, 수면장애, 만성피로는 매몰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의 공통된 증세다. 좋아하던 삼겹살도 구제역이 발생한 뒤에는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악몽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여주군에서는 공무원 2891명을 포함해 연인원 8175명이 방역과 매몰 작업에 투입됐다. 7만2433마리(한우 1899, 젖소 927, 돼지 6만9607)를 매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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