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맹수에서 로봇으로 … 이제는 ‘웃음 전도사’

차두리(31·셀틱)는 흰 이를 드러내고 언제나 벙글거린다.
뭐가 그리 좋은지 훈련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심지어 국가대표팀 경기 도중에도 웃는다. 그의 웃음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을 무장 해제시킨다. 그라운드에서는 무한 체력과 시원스러운 돌파를 선보이는 맹수지만 경기장을 벗어나면 개그맨 뺨치는 익살과 말주변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컵축구대회 바레인과 1차전 도중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은 선수와 흔쾌히 유니폼을 교환하는 모습에 ‘대인배’라는 칭찬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 당시 ‘로봇설’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으며 ‘차미네이터(차두리+터미네이터)’로 불렸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웃음 전도사’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으며 또다시 ‘차두리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유쾌함과 솔직함이 배어 나오는 차두리의 인간미 때문이다. 차미네이터라는 ‘로봇’은 아시안컵을 통해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포경수술 받은 뒤 키 쑥쑥 커”
차두리는 가식이 없다. 네 살 무렵 아버지 차범근이 뛰던 레버쿠젠(독일)의 유소년팀에서 자기 골대에 자책골을 넣고도 환호하던 때처럼 순수하다. “어릴 때는 또래보다 작아 걱정이 많았거든요. 배재고 1학년 때 단체로 포경수술을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키가 쑥쑥 자라더라고요. 하하하.”

아시안컵 바레인전 직후 자신에게 침을 뱉은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차두리.
대부분의 축구 스타가 남 앞에 나서는 걸 힘들어하지만 차두리는 자신을 감추지 않는다. 광고주들이 그를 선호하는 이유다. 최근 간장약 CF에서 차두리가 부른 ‘간 때문이야’라는 노래는 초등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빡빡머리에 코믹한 춤을 곁들이며 수퍼맨 흉내도 마다하지 않는 친근함 때문이다. 그는 냉장고·라면·스포츠용품·우유 CF 등에 연거푸 출연하며 ‘피겨 요정’ 김연아와 ‘캡틴’ 박지성으로 대표되던 스포츠 스타 CF 지형을 바꿔놨다. 차두리의 트위터 팔로어는 1만6000여 명으로 박지성의 팔로어 4800여 명보다 세 배 이상 많다.

“수비수가 골 넣는 게 금지된 건 아니죠”
차두리는 천성이 유쾌한 남자다. 하지만 국가대표 초창기 때만 해도 까칠하고 도도한 반항아였다. 차두리가 아닌 ‘차범근의 아들’로 끊임없이 비교를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아버지의 벽 앞에 그는 정체성을 잃고 좌절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버지가 중도 경질되는 아픔은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자신의 우상이었고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던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내몬 세상이 미웠다. 당시 그가 쏟아낸 말 속에는 날카로운 가시와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차두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역설적이게도 시련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독일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을 뛰고 싶었지만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아버지와 함께 해설을 하며 월드컵을 즐기면서도 그는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독일 월드컵 이후 그는 수비수로 변신했다. 아버지는 못내 섭섭해하며 만류했지만 아들은 “수비수라고 해도 골 넣는 게 금지된 건 아니잖아요. 수비를 잘하면서도 골을 보너스로 누릴 수 있어요”라며 설득했다. 아버지의 등번호 11번 대신 자신의 이름 ‘두리’를 뜻하는 등번호 2번을 달았다. 독일 분데스리가 프라이부르크에서 가능성을 보인 그는 지난해 여름 셀틱으로 이적한 뒤 수비수로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2008년 12월 신혜성씨와 결혼한 후 그는 한층 성숙했다. 지난해 2월 첫 딸 아인이를 얻었다. 아인은 독일어로 첫째(Ein)를 뜻하면서, 히브리어로는 ‘샘물’을 의미한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비닐 랩을 눈에다 붙이고 매운 양파를 써는 사진에는 인간 차두리의 행복이 넘쳐난다.

“짜식, 그깟 골 하나 넣었다고 난리야”
차범근 SBS 해설위원은 홀로서기에 성공한 아들이 여간 대견한 게 아닌 모양이다. 차 위원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는 차두리 이야기에는 진한 부정(父情)이 느껴진다. 지난해 12월 세인트 존스턴과 경기에서 차두리가 셀틱 입단 후 첫 골을 뽑아내자 차 위원은 “짜식~~~! 뭐 그깟 골 하나 넣었다고 자는데 새벽에 전화해서 깨우고 난리야. 흐흐흐흐”라고 적었다.

최근에는 “나는 두리가 웃통을 벗으면 이제 불안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차두리 문신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차 위원은 “지난 월드컵 때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난데없이 차두리가 웃통을 벗었다. 문신이라면 질색을 하는 엄마한테 분위기 좋은 틈을 타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꼼수를 쓴 것이 틀림없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면서도 “두리는 이제 긴장해야 한다. 엄마가 끌고 가서 레이저로 지울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압박(?)했다. 차 위원은 5월에 태어날 차두리 둘째(손자) 소식을 전하며 손자를 직접 축구를 가르쳐 3대 국가대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너희가 나보다 훨씬 잘한다”
51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조광래 팀은 차두리가 퍼뜨린 ‘웃음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조광래 감독은 “차두리가 선수단 사기를 끌어 올려 팀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느덧 대표팀 ‘넘버4’에 오른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심리치료사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제2의 차붐’에 도전하는 손흥민(19·함부르크)에게는 “나는 아버지와 주위의 기대감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지만 넌 잘해낼 수 있어”라며 어깨를 만져 주고, 지동원(20·전남)·윤빛가람(21·경남)에게는 “내가 대표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너희처럼 잘 하지 못했어. 너희 기술이라면 지금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차두리는 축구 기량도 한층 올라섰다. 남아공 월드컵 때만 해도 공격으로 이어주는 패스가 부정확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오른쪽에서 호흡을 맞춘 이청용에게 연거푸 킬러 패스를 찔러줬다. 차두리는 “내 선수 생활도 끝날 때가 다가왔다는 걸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아시안컵은 특별하다”고 말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차두리도 아시안컵 우승을 얘기할 때는 진지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