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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프로처럼 청각장애 벗어나길 바라며 …

“띠리리리링.”
나는 직감적으로 전화 벨소리가 심상찮음을 느낀다. 벨소리만 듣고 전화를 건 상대방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건 내게 남다른 예지력이 있어서라기보단 언론사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터득한 나름대로의 노하우(?) 덕분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정제원의 골프 비타민 <146>

“여보세요.”

단 한마디뿐인데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엔 전화를 걸어온 여성의 복잡한 감정과 심경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 예 말씀하십시오.”

“저, 인공와우(人工蝸牛) 수술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아, 청각장애 골퍼로 불리는 이승만(31) 선수 이야기군. 아침 신문에 실린 이승만 선수의 기사(중앙일보 1월 4일자 28면)를 보고 전화를 걸어온 게 틀림없었다. 선천성 청각장애 탓에 한마디도 듣지 못했던 이승만이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은 뒤 귀가 들리게 됐다는 뉴스였다. 새해 벽두 독자들에게, 골프팬들에게 반갑고 기쁜 소식임에 틀림 없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내게 전화를 걸어온 이 여자분은 도대체 왜 화가 난 걸까.

“인공와우에 대해 얼마나 알기에 이런 기사를 쓰셨냐고요.”
“저는 인공와우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모르지만 잘못된 부분이라도 있나요.”

나는 잔뜩 주눅이 든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성은 애써 감정을 다스리며 차분하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우리 애도 골프를 하고 있어요. 이승만 프로와 마찬가지로 청각장애 골퍼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얼마 전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했는데도 아직 소리를 듣지 못하거든요. 기자님 기사가 과장된 것 같아서 이렇게 전화를 건 거예요. 수술한 지 한 달 만에 소리가 들린다니 그건 오보 아닌가요. 이승만 선수를 직접 만나기나 하고 기사를 쓰신 거예요.”

그 순간, 여성 독자분이 왜 잔뜩 화가 나서 내게 전화를 했는지 알아차렸다. 동시에 청각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의 애틋한 심경을 아주 일부분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어머니, 제 기사가 심려를 끼쳐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쓴 기사에 과장이 섞였다거나 혹은 선수를 직접 만나지도 않고 기사를 썼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보고 느낀 그대로를 글로 옮겼을 뿐입니다. 이승만 프로가 ‘이제 소리가 들린다’며 좋아하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수술 예후에 따라 결과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요. 어찌 됐든 기사로 인해 상처를 입으셨다면 유감입니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골프선수 아들이 호전되면 다시 전화를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승만은 더 이상 청각장애 골퍼가 아니다. 비장애인처럼 모든 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순 없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전갈이다. 그런데 나는 깨달았다. 어항 속의 붕어처럼 절대 고요 속에서 사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소리를 듣게 됨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다. 마치 내 기사가 그 여성분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가 된 것처럼.

이승만 선수는 물론, 내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던 청각장애 골퍼의 어머니에게도 행운이 함께하
길 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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