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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사업보국’ 90년대 ‘다 바꿔라’, 지금은 ‘5년 후 먹을 것 찾아라’

한국전쟁 이후 1950~60년대 한국에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창업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착실히 기업을 일궈나가던 재계 주역들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 시절 기업인들이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개척과 도전을 강조했던 이유다. 이와 함께 인재 육성에 정성을 쏟았다. 자본과 기술은 물론 쓸 만한 인재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은 한국전쟁으로 위기에 처했다. 서울에 진출했다가 사업기반을 모두 잃은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대구 양조장을 위탁 경영한 직원들이 이 회장에게 수익금을 고스란히 건네줬다. 그 돈을 밑천으로 부산에서 재기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이 “사람이 의심스러우면 쓰지 말고, 한번 쓰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성어를 즐겨 인용하게 된 연유다. 그는 타계할 때까지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라는 경영철학을 실천했다. 그는 53년 제일제당, 54년 제일모직을 잇따라 설립했다. ‘제조업을 하는 것이 나라에 공헌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정주영 현대 창업 회장은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열아홉 살 때 인천에서 막노동을 했다. 빈대를 피해 밥상 위에서 자는데 여전히 빈대가 들끓었다. 불을 켜고 살펴보니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향해 툭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빈대도 목적을 위해 저토록 머리를 쓰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 성공하지 않는가. 무슨 일에든 절대 중도 포기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을 쏟아붓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LG 구인회 창업 회장은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라”는 개척정신으로 유명하다. 그는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이 사회에 봉사하면서 돈을 버는 길”이라는 신념을 평생 버리지 않았다. 선경직물을 세워 ‘닭표’ 인조견으로 ‘해방 10주년 산업박람회’에서 부통령상을 받은 SK그룹 창업자 최종건 회장 역시 ‘추진력 강한 저돌적인 사업가’라는 평을 받았다.

“경영은 조정 경기가 아니라 급류 타기”
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이 시작되면서 총수들의 행보는 공격적으로 변했다. 정주영 회장은 소양강댐(67년)·경부고속도로(70년)·울산조선소(73년)를 잇따라 완공했다. 그는 이 무렵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가면서 나가면 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런 정신으로 밀어붙인 끝에 이뤄낸 또 하나의 역작이 ‘포니 신화’였다. 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는 현대자동차의 첫 고유 모델인 포니가 선을 보였다. 포니는 90년 단종될 때까지 국내외에서 74만 대가 팔리며 현대차가 ‘자동차 빅5’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전자도 세계로 나아갔다. 삼성은 69년 전자를 설립한 데 이어 74년에는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하며 반도체 산업에도 진출했다. 이병철 회장은 83년 도쿄선언을 통해 첨단 반도체 제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6개월 만에 64kD램을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공개된 ‘삼성전자 40년사’에는 “6개월 안에 공장을 완공하라”는 이 회장의 지시를 받고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서 경기도 기흥에 공장을 건설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듬해 봄 양산에 들어간 삼성은 그로부터 10년 후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랐다.

75년 제2 창업을 선언한 최종현 SK 회장은 “60년대가 설비 경쟁의 시대라면 앞으로는 경영 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국내 최초의 기업 연수 시설인 ‘선경 연수원’을 세우기도 했다. 최 회장은 80년대 중반부터 일찌감치 ‘글로벌라이제이션’을 경영 화두로 제시했다.

외형이 커지면서 경영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88년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을 발표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율경영’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영이 조정 경기였다면 앞으로는 그랜드캐년 협곡에서 벌어지는 보트 경기”라고 말했다. 물살이 완만한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조정은 리더가 뱃전에서 구령을 붙이면 팀원이 일사불란하게 노를 젓는 방식이다. 하지만 급물살이 몰아치고, 언제 어디서 장애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래프팅에서 같은 방식을 쓸 수는 없다는 것. 구 명예회장은 “리더가 한가로이 구령을 붙일 수도 없고, 하물며 일일이 지시할 여유도 없다”며 “골인 지점을 향한다는 목표만 공유하면 각자가 제 위치에서 스스로 판단해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변화는 삼성에도 몰아쳤다. 이병철 회장의 타계로 87년 말 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을 했다. 그는 삼성을 “해외에서는 여전히 외면받는 ‘우물 안 개구리’로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로 진단했다. 영양 실조, 당뇨, 선천적 불구, 암 말기 등의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미꾸라지 무리 사이에 메기를 넣어야 긴장해 도망 다니느라 미꾸라지들이 더 튼튼해진다”는 ‘메기론’도 나왔다. 이 같은 이 회장의 ‘위기경영’ 덕에 삼성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위기 겪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2000년대 들어 위기에서 살아 남은 한국 기업들은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해 체질 변화가 필요해졌다. 해외 선두 기업을 벤치마킹하고 닦아놓은 길로만 따라가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총수들의 입에서 글로벌, 비전, 미래 먹을거리 등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95년 취임한 구본무 LG 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30조원이던 매출을 지난해 140조원으로 키웠다. 구 회장의 뚝심을 보여주는 분야가 2차 전지다. 구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한 2차 전지 사업은 2006년 2000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구 회장이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독려한 끝에 LG화학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부문에서 GM·포드 등과 장기 공급 계약을 맺은 강자로 떠올랐다. 그는 올 신년사에서 고전하는 LG전자를 의식한 듯 “지난해는 한때의 성공에 안주하거나 방심하면 고객으로부터 바로 외면받게 된다는 교훈을 얻은 해”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상황이 어렵다고 현안에만 신경을 쓴다면 더 이상 새로움이 없는 기업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며 “5년, 10년 후를 보고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외환위기의 와중에 38세의 나이로 선친의 뒤를 이은 최태원 SK 회장 역시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라”는 유훈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시스템 경영을 강조한다. 2006년 사내 세미나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만들어온 SK의 문화는 시스템을 통한 자율경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신년사에서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파부침주를 언급했다. 퇴로를 스스로 끊어 버리는 결사의 각오를 뜻한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해외사업의 부진 등을 반영한 것이다. 올해는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온 붕정만리를 택했다. ‘붕새는3000리의 물을 치고, 그 기운을 타고 9만 리를 날아오른다’는 고사성어다. SK가 치고 떠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다.

2000년 현대차그룹으로 독립한 정몽구 회장은 글로벌 경영과 품질을 강조한다. 그는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디자인센터를 여는 자리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완전한 현지화를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듬해에는 “생산과 품질 향상에는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친환경차 기술 개발 등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라”고 주문했다.

90년대 위기경영으로 고삐를 죄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다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달 초 4년 만에 내놓은 신년사에서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업·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진다”며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제품이 자리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부터 10년이 100년을 좌우하는 도전의 시기가 될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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