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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한 캔디렐라, 욕망의 팥쥐렐라 …시대 반영한 캐릭터로 긴 생명력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대성공으로 신데렐라 이야기는 다시 한번 진화했다. 지난가을 내내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남주인공들이 매력적이어서 여인네들이 오줌을 찔끔거린다는 표현)’에 빠졌던 시청자들이 모두 ‘주원앓이('주인공 김주원 신드롬을 의미)’를 하며 겨울을 보냈다. 식상할 대로 식상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다시 이렇게 열광의 대상이 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구도는 남성중심적이면서 계급이 있는 사회라면 어느 시대에나 인기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가진 것 없는 여자가 급작스러운 계층 상승을 위해 가장 손쉽게 꿈꿀 수 있는 방식이 바로 결혼이기 때문이다. 콩쥐팥쥐 설화나 고소설 ‘춘향전’ 모두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다.하지만 그렇게 보편적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변주는 매우 다양하며, 당대적 현실성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인기의 성패가 갈린다. 말하자면 ‘시크릿 가든’의 인기도, 그것이 신데렐라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변주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데델라 꿈’ 꾸던 60년대 남자들
이토록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유독 근대 이후의 우리 대중예술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20세기 중반까지 우리 대중예술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광인 영진이가 대표하듯 좌절한 남자들의 이야기였고, 이런 남자들과 함께 사느라 눈물 마를 날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1960년대 대중예술에서 신데렐라의 꿈은 놀랍게도 남자들의 것이었다. 신성일·엄앵란의 ‘맨발의 청춘’(1964)이 잘 보여주듯, 60년대 청춘영화의 대부분은 부잣집 딸과 가난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였다. 세상은 남자들에게도 힘겨웠으니, 여자들 역시 신데렐라의 꿈이 가당찮은 상황이었다.그러니 신데렐라의 꿈은 그저 결혼이 달콤하다고만 생각하는 소녀들의 순정만화에서만 둥지를 틀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이 실현된 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그것은 대중예술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94년 드라마 ‘사랑은 그대 품 안에’는 그 시작이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미 여자들이 당차고 발랄해진 이후였고, 따라서 우리 드라마 속의 신데렐라는 처음부터 발랄씩씩한 ‘캔디렐라’였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대유행은 이로부터 몇 년 후 본격화된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영향에다 97년 말 외환위기 상황이 겹치면서, 새로운 신데렐라 이야기의 경향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필자가 다른 평론에서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라고 명명했던 바와 같이, 선악의 두 여자 인물이 일과 사랑을 놓고 야망을 불태우며 경쟁하는 이야기로 ‘토마토’(1999), ‘이브의 모든 것’(2000) 등이 대표적이다. 선하든 악하든 야망을 위해 악착같이 싸우는 여성 인물이 주도하는 이들 드라마는, 확실히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다는 압박감을 갖게 된 시대의 산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남자 주인공은 여주인공의 막강 후원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여성 인물들이 쟁취할 목표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외환위기 시대의 신데렐라 이야기 속 여자들은 야망을 향해 달려가는 적극적인 인물이었고, 이들에게 직업적 성공은 중요했다. 이는 ‘나는 나다’ ‘그런 가르침은 됐어’를 외쳤던 90년대 신세대 문화 속에서 구김살 없이 성장해온 여성들이, 이 경제적 위기의 상황에서도 성공의 꿈을 꺾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90년대엔 씩씩함, 2000년대엔 비현실적 사랑
외환위기의 시대가 지났으나 살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대 초기에 각광받았던 ‘옥탑방 고양이’(2003) 같은, 매우 희망적이고 건강한 알콩달콩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새로운 신데렐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2004년부터의 신데렐라들은, 디자이너나 앵커우먼 같은 멋진 직업을 향해 달려가는 의지적인 인물들이 아니었다. 이런 꿈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대중이 깨달아가기 시작하면서 드라마 속 신데렐라들은 다소 말랑말랑해지거나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2004년에 주목받은 두 편의 대조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이다.

‘파리의 연인’은 출생의 비밀 때문에 괴로워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강화되면서, 직업적 야망이나 의지가 별로 없는 예쁘고 귀여운 여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신데렐라가 될 수밖에 없는, 꿈과 같은 사랑 이야기였다. 그에 반해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여주인공은 돈 때문에 휘둘리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돈도 학력도 재주도 없으니 커리어우먼은 꿈꿀 수조차 없어 싸구려 여행가이드나 노래방 도우미로 먹고사는 인물이다. 두 작품은 이렇게 다르지만, 결국 멋진 전문직과 부드러운 남자 후원자를 희망하는 90년대식 꿈에 대한 자신감이 현격하게 결여돼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90년대식 화려한 꿈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내 이름은 김삼순’(2005) 같은 ‘순데렐라’의 현실적 변형을 즐겁게 받아들인 한편, 이전의 신데렐라 판타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얼토당토않게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낭랑 18세’(2004), ‘풀하우스’(2004)에서 ‘궁’(2006), ‘꽃보다 남자’(2009), ‘미남이시네요’(2009)는 모두 아직 철부지 강아지 같은 여주인공이 대갓집 종손인 검사, 스타 연예인, 황태자, 그와 다를 바 없는 재벌 후계자와 이상스러운 결혼을 해버리거나 혹은 생활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는 설정이다. 대략난감 좌충우돌을 거듭하는 여주인공은 멋진 직업에 대한 의지 같은 것은 전혀 없고, 의지가 없으니 절망도 없다. 빚에 쪼들리고 입시에 시달리는 등 이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급작스러운 결혼이라도 별 고민 없이 감행한다. 탈출을 위한 상상에 무슨 리얼리티가 필요하겠는가. 입헌군주제의 궁궐, 남장 여자, 귀족학교 등 발칙한 상상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몸 바꾸기’ 설정은 절망적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
이번 ‘시크릿 가든’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남녀의 몸이 바뀌는 환상적 설정을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는 까르르 웃게 되지만, 사실 그 뒤에 깔린 것은, 멋진 전문직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결혼을 통한 계층 상승조차 이제 꿈꿀 수조차 없다는 완벽한 절망이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바로 그 꿈의 불가능성, 엄연한 계급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한 대목에서 빛난다. 재벌의 손자로 31세에 백화점 사장이 된 김주원(현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진헌을 연상하게 한다)은30만원 월세의 옥탑방에 친구와 자취하는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발리에서 생긴 일’의 수정을 연상하게 한다)에게 자신의 관심이 쏠리는 것 자체를 당황스러워한다. 사랑스러운 여자를 만나 사랑하는 것이 당연했던 이전의 드라마와 전혀 다르다.

당황한 그는 사촌형 오스카에게 ‘월세 사는 사람’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올 거 같은 그런 데 사는 사람’과 직접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지만 오스카 역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마음속에서 사랑이 싹트자 그는 길라임에게 영원한 사랑이나 결혼을 약속하는 대신, 오라면 오고 곁에 있으라면 있다가 어느 순간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라고, 참으로 독특하게 사랑을 드러낸다. 실제 이런 인물과 만났다면 매우 불쾌했겠지만, 드라마의 문법대로 결국은 길라임과 사랑에 빠지리라 예상하는 시청자로서는, 이런 불가능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김주원 캐릭터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서로 다른 계급의 삶을 살아본다는 것은, 몸이 바뀌는 판타지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종반부에서 두 연인이 번갈아 뇌사상태로 빠진다는 설정 역시, 이들이 같은 세상에서 함께 사랑하며 살아갈 수는 없음을 징후적으로 말해준다. 해피 엔딩은 죽은 아버지의 마법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사회는 이제, 3세 경영의 시대에 도달했다는 점에서도 확인되듯, 계급 고착의 양극화된 사회가 되었다. 그 두꺼운 벽을 뛰어넘을 만큼 탁월한 유전자를 가진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보통사람은, 멋진 억대연봉자가 되거나 결혼으로라도 계층 ㄴ상승을 할 꿈을 꾼다는 것이 너무도 웃기는 얘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크릿 가든’은 이 살벌한 세상의 논리를 과감히 인정하며 기발한 판타지로 돌파하는 힘으로,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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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