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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캐릭터를 통해 서로를 살찌우는 삶과 文化

일본이 정말 부러운 건 이런 때다. 문화가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서로를 풍요롭게 만드는 걸 목격했을 때. 최근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의 ‘타이거 마스크 운동’이 그렇다.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학대 받은 아이들이 생활하는 보육원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작은 정성을 기부한다. 그것만으로도 물론 충분히 훈훈하다. 하지만 이 사연에 ‘타이거 마스크’라는 인기 만화의 주인공 캐릭터가 결합되면서 이야기에는 작은 웃음과 여유, 행복감이 포근하게 더해진다.

알려진 대로 시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였다. 군마(群馬)현의 한 어린이 시설에 다테 나오토(伊達直人)라는 이름이 적힌 편지와 함께 어린이 책가방인 란도셀 10개가 도착했다. 편지에 적혀 있던 다테 나오토가 1960~7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만화 ‘타이거 마스크’의 주인공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시설에서 일하는 한 중년 직원. 만화 속 다테 나오토 역시 고아로 자라 프로레슬러가 된 뒤 경기에서 번 돈을 자신을 키워준 시설에 기부한다. 이에 따라 언론에서는 ‘40년 전 이 만화의 열성팬이었던 중년층일 것’이라며 ‘타이거 마스크’의 정체를 예측하기도 했다.

이 기발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에 자극 받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속출, 일본 전체 47개 도도부현에서 350여 건이 넘게 비슷한 선행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기부된 란도셀이 350개 이상, 기부금은 1000만 엔을 넘어섰다.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엔 다테 나오토로 통일됐던 기부자의 캐릭터가 무한대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타이거 마스크’의 작가인 가지와라 잇키(梶原一騎)의 작품 ‘거인의 별’의 주인공 호시 류마(星飛雄馬)나 ‘내일의 조(한국 제목 ‘도전자 허리케인’)’의 주인공 야부키 조(矢吹丈) 등이 먼저 등장했다. 이어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 천재도둑 루팡, 가면 라이더, 호빵맨, 사자에상 등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름을 빌린 선행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야말로 ‘캐릭터 대국’에 걸맞은 독특한 선행 방식이라 할 만하다.

100만 엔 등의 거액을 기부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책가방·자전거·학용품·과자 등 소액기부다. ‘시골의 다테 나오토’라는 이름으로 배추와 파 등의 농산물을 시설 앞에 갖다 놓은 경우도 있고, ‘과연 어린이들에게 필요할까’ 싶은 미소녀 피규어 등을 기부한 사람도 있다. 이렇게 캐릭터 뒤에 숨은 선행이 남들의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소극적인 성격과 잘 들어맞는 방식이라는 분석도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베풀고 싶은 마음을 솔직하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영웅의 이름을 빌려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사히 신문 역시 “타이거 마스크 현상을 지속적인 기부문화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쑥스러움의 복면을 벗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미 절판된 만화 ‘타이거 마스크’를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타이거 마스크’(전 7권)와 ‘타이거 마스크 2세’(전 2권)를 출간한 고단샤에는 이미 수천 건의 주문이 쇄도, 재발행을 계획 중이다. 방송사에는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여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 같은 저자의 작품이자, 역시 시련을 딛고 일어나는 고아 출신 복서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내일의 조’는 영화로 만들어져 2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 ‘타이거 마스크 운동’ 덕분에 관심이 부쩍 커진 분위기다. 삶과 문화는 이렇게 서로를 살찌운다.



이영희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 게이오대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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