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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과 함께한 5000년의 삶 … 살아있는 박물관

1 호수 위에 우뚝 솟아있는 스토라 셰팔레트 국립공원지역에 있는 아카바레 산. 해발 2016m다.2 빙하작용으로 조성된 라플란드 복합유산지역의 풍경. 거대한 산과 산 사이에는 어김없이 협곡과 호수가 조성돼 있다. 3 사례크 국립공원의 동남쪽 호숫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침엽수림.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키루나 공항은 설국이더라
5년 전 찾아간 얼음호텔을 떠올리며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서 키루나(Kiruna)행 항공기에 올랐다. 창을 통해 본 중부 스칸디나비아 풍경은 한 장의 그림엽서였다. 노랑, 빨강, 감색, 초록이 연출하는 멋진 풍광을 한 시간쯤 감상하자 들판과 나무 사이로 하얀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안착한 키루나 공항은 설국이었다. 렌터카로 공항을 빠져나오자 유럽 최대 철광산지 ‘키루나’를 상징하는 커다란 굴뚝이 보였다. 키루나에서 남쪽으로 달리기를 2시간 남짓. 북구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은 도시 갈리바르(Gallivare)가 시선에 들어왔다.

4 라플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맹금류 물수리가 바위 위에서 주변을 응시하는 모습
자동차에 부착된 시계는 이제 막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사방이 어둡다. 건너편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벗 삼아, 보름달에 반사된 도로를 따라 다시 남쪽으로 40여 분을 이동하자 유네스코 복합유산지역임을 알리는 사인보드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서 기다리던 안내판이 보였다. 7일 동안 머물 스토라 셰팔레트 호텔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앞으로 120㎞라는 표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꼬박 3시간 동안 눈길을 달려 마주한 스토라 셰팔레트 호텔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5 전통복장을 한 라프인이 눈썰매를 끄는 순록과 함께 서 있다.
‘바다의 섬’ 연상케 하는 호숫가 옆 침엽수림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호텔 지배인 잉에르 융칸(Inger Junkkan)을 만났다. 2005년 처음 알게 된 그녀는 이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라프인이다. 투숙객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그녀에게 가보고 싶은 여섯 곳을 말했다. 그녀의 대답은 “노(No)”. 아직 호수와 삼각주 습지는 안전할 만큼 얼음이 얼지 않아 아예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숙소 북쪽 스토라 셰팔레트 국립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자란 로지폴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코끝을 자극하는 공기가 예사롭지 않다. 로지폴 소나무가 뿜어내는 솔향기가 단숨에 허파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다. 정신까지 맑아지게 만드는 신선한 공기 속을 걷기를 2시간여. 해발 1400m란 고도 표시가 붙어있는 언덕에 서자 호숫가에 자리한 숙소와 멋진 풍광이 시선에 잡혔다. 하얀 눈 옷으로 단장한 호수, 너무 먼 탓에 고원처럼 보이는 평평한 산, 로지폴 소나무와 침엽수림이 어우러진 호숫가 풍경은 바다에 떠 있는 섬을 연상시켰다.

후기 빙하지역에 속한다. 내륙에 넓고 깊게 조성된 빙하는 산과 산 사이에 U자 협곡을 만들어 놓았으며, 지금도 지속적인 침식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물은 급류가 되어 협곡을 깎아냈고 그렇게 깎여나간 바위와 돌 조각들을 계곡과 호수로 옮겨 놓았다. 산과 계곡, 호수 지역에는 원형에 가까운 구릉과 여러 모양의 퇴적층이 조성돼 있었다. 연중 8개월이 겨울이라는 척박한 환경은 이 지역에 대한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덕분에 라플란드는 유럽에서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남을 수 있었다.

산록과 평원이 공존하는 무두스 공원
9개 지역으로 구분된 라플란드 복합유산지역은 제각기 특색이 있다. 라파다렌 삼각주가 호수와 습지로 어우러진 곳이라면 스토라 셰팔레트 국립공원에는 고산이 몰려 있다. 파제란타 국립공원은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무두스 국립공원은 산록과 평원이 공존하는 곳이다. 지역이 넓은 만큼 구역마다 서식하는 동식물도 뚜렷하게 구분된다. 높은 산과 넓은 대지로 이루어진 스토라 셰팔레트 국립공원에는 이끼류, 침엽수, 로지폴 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등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동물과 조류도 여타 지역에 비해 많아 라플란드를 상징하는 맹금류인 물수리를 비롯해 흰꼬리수리·검은 독수리·긴꼬리올빼미·수달 등 200여 종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유럽은 물론 열대 우림지역을 제외하면 지구촌 최대 규모다. 또한 오소리, 흰 담비, 북극여우, 스라소니, 수달, 엘크, 불곰, 순록 같은 야생 동물도 많이 살고 있다.

라플란드 복합유산지역 가운데 풍부한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으로는 셰팔레트 국립공원 남쪽에 자리한 사례크와 파제란타 국립공원을 꼽을 수 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사례크와 파제란타 국립공원에는 각종 맹금류를 비롯해 불곰, 북극여우, 서싯오소리, 흰 담비와 엘크가 서식하고 있다. 스웨덴 환경연구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사례크 국립공원과 파제란타 국립공원에는 복합유산지역에 서식하는 동물과 맹금류 가운데 절반이 넘는 150여 종의 조류와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어류와 침엽수, 작은 식물들은 라파다렌 삼각주와 무두스 국립공원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썰매 대신 스노모빌… 라플란드 미래 불투명
라플란드에서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얼마나 더 지속될까? 관광산업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썰매와 순록을 어렵지 않게 보겠지만 그 빈도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5000년 동안 라플란드에 거주했던 라프인의 삶은 순록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순록은 라프인에게 삶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야생 순록을 잡아 고기와 젖을 먹었으며, 힘줄은 옷을 꿰매는 데 사용했다. 또 가죽은 전통적인 이동식 주택인 라이토크(laitok)를 만들거나 보온용으로 사용했다. 사육된 순록은 교통수단과 짐을 옮기는 데 이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 오늘날 순록을 수렵하는 라프인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순록을 사육하는 유목인만 있을 뿐이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라프인은 대략 3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중 200~250명 정도가 순록을 사육하며 살고 있다. 이들이 사육하는 순록은 3만여 마리 수준. 이 숫자는 근대 문명이 라플란드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20세기 초반에 비해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라프인의 생활에서 현대문명은 편리함을 선물하고 고유 문화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순록을 사육하는 라프인조차 썰매 대신 공장에서 생산한 스노모빌을 이용하고 있다. 이동식 주택도 사정은 비슷하다. 라플란드의 미래가 불투명한 이유다.

스웨덴 정부에서 라프인의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민속학교를 건립해 라프 고유 언어와 전통문화를 잇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넓은 국립공원과 국립자연보호구역 등은 스웨덴 정부에 의해 잘 보존되고 있지만 전통적인 삶을 잇는 라프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 다음 호에서는 중국 아미산과 낙산대불을 찾아갑니다.


라프(Lapp)인의 땅이란 의미를 지닌 ‘라플란드(Lapland)’는 유럽 대륙 최북단에 걸쳐 있다. 러시아




이형준씨는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130여 개 나라, 1500여 곳의 도시와 유적지를 다니며 문화와 자연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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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