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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군주를 이롭게 못할 명령에 따르는 건 아첨이다

시라쿠사에 히에론이란 왕이 있었습니다. 시라쿠사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던 도시국가로 고대엔 그리스의 일부였지요. 히에론은 장인이 만든 왕관의 금 함량을 의심해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에게 확인을 의뢰한 그 사람입니다. “유레카(알았다)!”를 외치며 알몸으로 목욕탕을 뛰쳐나간 아르키메데스의 스트리킹은 유명한 일화죠. 그 히에론이 어느 날 경쟁 도시의 왕과 회담을 하게 됐습니다. 대화가 무르익어 담판이 지어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상대 왕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습니다. “더 이상 당신의 입냄새를 참을 수 없소.” 망신을 당한 히에론은 즉시 성으로 돌아와 왕비를 야단쳤습니다. “왜 지금까지 내게 주의를 주지 않았소?” 그러자 왕비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남자들은 다 입에서 냄새가 나는 줄 알았어요.”

 왕비는 정숙했을진 몰라도 현명하진 못했던 거지요. 현명한 왕비였다면 왕이 체면을 구기는 일이 없도록 미리 구취를 없앨 방안을 마련했을 겁니다. 신하들도 마찬가집니다. 왕의 입냄새까진 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평소 왕의 단점을 지적해 무결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현명한 신하의 도리지요. 그런 신하들이 없다면 왕은 친구가 아닌 적의 입으로부터 자신의 결점을 듣게 되는 겁니다.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진 않더라도 권위에 금이 가는 걸 막을 수 없겠지요.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감사원장 인사 말입니다.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가 여당한테도 등돌림을 당하고 청문회도 못 해본 채 자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궁극적으로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책임이 되겠지만 정말 한심한 건 청와대 참모들입니다. 돈을 어떻게 얼마나 벌었다는 전관예우 문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의 심복이었기에 그는 독립성이 요구되는 감사원장에는 자격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나중에 대통령을 향해 날아올 부메랑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사람 시키겠다는 대통령을 말렸어야 했던 게 아닐까요. 그걸 몰랐다면 무능한 거고, 알고도 나뒀다면 직무유기를 한 겁니다. 모두 사퇴한 감사원장 후보자를 따라 사표를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권력자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다 자기 목이 날아가기 십상이지요. 하지만 할 소리는 못하고 반대 여론이 들끓자 “합법적으로 돈 벌고 세금도 냈으니 문제 없다”고 우기는 게 의무라고 생각하는 참모들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는 게 백성의 걱정을 더는 일일 겁니다.

 순자(荀子)는 신하의 길(臣道)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 명령을 따르고 군주를 이롭게 하는 걸 순(順)이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입니다. 현명한 군주의 현명한 지시를 잘 따르니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둘째, 명령을 거스르며 군주를 이롭게 하면 충(忠)입니다. 무조건 따른다고 충성하는 게 아니란 얘깁니다. 셋째, 명령을 따르는데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첨(諂)입니다. 군주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건 아첨에 불과하다는 거지요. 넷째, 명령을 거스르고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그건 찬(簒)입니다. 이건 반역이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청와대 참모들이 해야 했던 것은 둘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짓은 셋째였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게 순자가 말한 다섯째 길입니다. “군주의 명예나 치욕, 그리고 나라의 흥망을 돌보지 않고 구차하게 영합해서 녹봉만 받으며 사교에만 힘쓰는 것을 국적(國賊)이라 한다.” 도둑이라고까지 말한다면 지나친 걸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절대로 공직을 가질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국가의 녹을 먹으며 자신의 영달만 추구하는 게 어찌 도둑이 아니란 말입니까.

 춘추시대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말했습니다. “왕이 돼 좋은 점은 무슨 말을 해도 거역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연주하던 장님 악사 사광(師曠)이 거문고를 들어 왕을 내리치려 했습니다. 그게 어디 왕이 할 말이냐는 거지요. 그런 기개는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닙니다. 지금부터 사광의 거문고를 가슴속에 새기십시오. 항상 줄을 팽팽하게 당겨 놓으세요. 그리고 거문고로 내리치진 않더라도 언제든 경고음을 울리세요. 그런 마음가짐이 큰일을 하기 위한 첫걸음이고, 자신을 지키는 일이며, 도적이 되지 않는 길입니다. 괴테도 같은 말을 합니다. “좋은 충고로써 잘못을 돌이킬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이 한 것과 다름없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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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