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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탐방] 천안 쌍용동 동아벽산아파트(용암마을)

11일 오후 천안시 쌍용동 동아벽산아파트(용암마을). 얼어붙은 눈길 위로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종종걸음으로 어딘가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손을 비비며 들어간 곳은 103동 103호.



노인과 아이들이 어울려 책 읽는 곳 … 화합·사랑·존경이 있는 아파트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용암마을 노인회는 올해도 독후감 쓰기, 다독자 표창 수여, 교육방송TV 설치 등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 할 계획이다. 왼쪽에서 네 번째가 주진주 회장. 조영회 기자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지원(14)·지훈(11)·지수(6) 3남매가 기운찬 인사를 건네며 신발을 벗기 무섭게 거실에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하나씩 집어 든 아이들이 책상에 둘러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3남매 말고도 몇몇 아이들이 먼저 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 손주들, 뭐 필요한 거 없니? 할미(할머니)가 따뜻한 코코아라도 한 잔 타 줄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로 먼저 타 달라고 아우성쳤다. “알았다. 녀석들아 보채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요. 할미(할머니)가 맛있게 타줄게. 허허 이쁜 내 새끼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를 마시며 재미있게 책을 읽어 내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표정에서 미소가 묻어 나왔다.



 아파트 단지 안에 마련된 작은도서관 ‘용암문고’에는 4500여 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종류로 보나 양으로 보나 시중에서 책을 파는 웬만한 작은 서점과도 견줄만하다.









노인회원이 도서대출장부를 기록하고 있다.



용암마을 노인회에서 2009년 5월부터 운영하는 용암문고는 방학을 맞은 초·중학교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주변에 시립도서관이 있지만 강추위가 이어지자 이곳을 찾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무엇보다 ‘혹시 눈길에 미끄러져 다치지는 않을까. 큰 길을 건너야 하는데 사고는 나지 않을까’하는 부모들의 걱정이 사라졌다. 무료하게 세월을 보내던 경로당 노인들이 “젊은 시절 경험과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 마을을 위해 봉사한다면 보람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며 의기투합해 마을도서관을 만들었다.



 35년간 교직 생활을 한 주진주(71) 노인회장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버려져 있는 책을 보고 불현듯 “책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면 되겠다”며 낸 아이디어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노인회 총회를 열어 의견을 냈고 모든 이가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이 같은 내용을 각 가정에 알리고 책 기증 운동을 전개한 결과 300여 권이 모였다. 처음에는 경로당 한쪽에 책꽂이를 마련하고 도서를 대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천안시에서도 200여 권의 책을 보내줬다. 주변 각 단체에서도 책을 기증해 6개월 만에 모두 1000여 권의 책이 쌓였다. 장소가 좁아지자 아파트관리사무소의 도움으로 현재의 132㎡(40여 평) 공간을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교장 시절 평소 책 읽는 습관을 강조했던 주 회장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가 새겨진 현판을 달았다. 이후에도 도서기증은 계속 이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서관 현관문에는 많은 책이 쌓여 갔다. 주민들이 누군지 모르게 적게는 서너 권에서 많게는 수십 권까지 놓고 갔다.



 주 회장은 퇴직 교장들과 함께 2달 동안 기증 도서를 분류해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갔다. 노인회원들이 매주 7개조로 나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도서대출과 독서지도봉사를 하고 있다.



 도서관은 아파트에 사는 학생과 주민들이 이용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주부독서클럽도 생겼다. 도서관을 열기 전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오전에는 2개 팀의 주부독서클럽이 토론회를 갖고 있다. 주민들로 구성된 도서관 후원회도 발족했다.











작은도서관 ‘용암문고’가 도서관의 기능과 함께 만남과 토론, 화합의 장소로 이용되면서 주민을 위한 문화센터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성공적인 도서관 운영사례가 알려지자 주공9단지 노인회와 백석동 노인회에서도 도서관을 운영하는 등 인근 단지로 확산됐다.



이런 노력들을 인정받아 2009년에는 용암마을노인회가 모범경로당으로 선정돼 충남도지사 표창 수상과 함께 2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노인회는 상금 전액을 445권의 장서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소식을 들은 부녀회에서도 200만원을 들여 480권의 도서를 구입, 기증하는 등 훈훈함을 더했다.



 주 회장은 “노인과 아이들이 어울려 책을 읽는 풍토가 조성되면서 서로 인사하고 화합하며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분위기가 생겨 뿌듯하다”면서 “부모들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고르고 함께 읽는 모습을 보면 한 없는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웃음 지었다.



 탁예순(75·여) 총무는 “경로당에 모여 화투나 장기, TV를 보며 허송세월을 보냈던 노인들의 삶도 변화됐다”며 “지역 어른으로 아이들과 주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체만으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의=주진주 노인 회장(010-6417-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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