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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나쁘기’ 전에 ‘아픈’ 그들, 마약중독자







김남천의 소설 ‘제퇴선’(『조광』, 1937.10)의 삽화. 이 소설에서 사회주의자였던 의대 출신 주인공 박경호는 연인인 기생 향란이 마약중독자라는 사실 앞에 “아편쟁이니까 죽일 년이다, 이렇게 보는 눈은 속된 관찰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현실에 대하여 항의하는 방법은 이 불쌍한 가련한 여자를 옹호하고 그를 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마약은 언제 들어왔을까. 아편은 1880년 원산항 개항 이후 중국 상인들에 의해 유입되었고, 모르핀은 1890년대 서양 선교 의사들에 의해 치료제로 들어왔다. 1890년대에 ‘독립신문’에서는 아편 유입을 우려하는 기사와 논설을 자주 게재했고, 1912년부터 조선총독부는 아편을 취체(取締)하는 여러 규제안과 법령을 공포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편 및 기타 마약류의 밀거래는 더욱 성행했다. ‘아편쟁이’ ‘모루히네(또는 ‘모히’, morphine) 중독자’ ‘자신귀(刺身鬼, 자기 몸에 주사를 놓는 모르핀 중독자들)’를 검거했다는 소식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반드시 실리는 신문 기사였다.



 마약 중독은 조선의 모든 계층을 병들게 만들었다. 귀족계급의 자제들,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들과 같은 상류층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중독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고 그 자신도 모르핀에 중독되었던 병원 원장도 있고, ‘몸에 찌를 이것이 없고는 하루를 살지 못하는’ 외국영사관 통역생도 있었으며, 아편 값을 위해 아내나 딸을 기생이나 첩으로 팔아넘기는 가난한 남편, 비정한 아비도 있었다(‘살인마·자신귀 아편굴 대탐사기’, 『별건곤』, 1927.2). 이렇듯 마약은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약중독을 ‘범죄’로 취급하게 된 것은 단순히 이런 개인들을 ‘걱정’해서만은 아니었다. 근대의 권력은 개인의 몸이 국가나 자본 등에 순응적이면서도 유용하기를, 다시 말해 규율 잘 지키고 일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데(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1975), 마약에 중독된 자들은 그럴 수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였다. 마약의 밀거래로 경제의 건전성을 무너뜨리고, 병들고 무절제하여 노동력이 없는 마약중독자들은 근대 국가의 생산성에 해가 되는 존재라서 처벌받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국가에서 마약중독자를 범법자가 아닌 치료대상으로 보는 데에서 알 수 있듯 마약중독자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아픈’ 사람들이다(물론 그들이 환각상태에서 부가적인 위해(危害)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특정 물질에 의존해 자신의 몸을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는 중독자의 삶이란 타인의 비난이나 국가로부터의 처벌을 받기 전부터 이미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다. 한국인인 이상 마약사범들이 법적 처벌을 피할 수는 없으며, 그것을 계기로 중독에서 벗어난다면 좋은 일이겠다. 하지만 그들을 맹비난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전에 먼저 ‘아픈’ 그들이 회복되기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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