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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스티브 잡스보다 더 위대한 세종대왕







황창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장




예술과 과학, 양립할 것 같지 않은 두 단어다. 예술은 어쩐지 아날로그적이고, 과학은 디지털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 보면 공통 분모가 있다. 둘 다 ‘창조’의 동력이자 산물이다. 예술이 발전한 나라치고 과학 기술 후진국은 드물다. 창조의 DNA는 서로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예술과 과학을 넘나들며 두 분야를 통섭(統攝)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10대, 20대 예술인들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예술과 과학의 잠재력이 서로 무관치 않다는 생각은 더욱 짙어진다. 많은 언어학자는 한글이 정보기술(IT) 시대에 있어 가장 경쟁력 있는 문자 중 하나며, 이거야말로 융복합 예술의 극치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훈민정음은 바른 음(正音)으로 백성을 가르치는(訓民) 선각자의 통치 의식을 담고 있다. 정음이란 감각과 감성을 겉으로 나타내는 소리였는데, 그것이 문자로 표현되자마자 의식은 창조의 수단을 얻게 된 것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가슴속에 고이는 정서와 머릿속에 맴도는 인식을 문자로 실어낸 훈민정음이야말로 ‘IT 한국’의 물꼬를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은 타고난 통섭 능력을 백성들에게 아낌 없이 전수하는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다.



 한글의 ‘과학성’과 ‘예술성’은 세계 어느 문자와 비교해도 단연 발군이다. 24개의 자음·모음만으로 모든 문자를 단번에 입력할 수 있는 한글의 시스템은 3만 개가 넘는 글자를 여러 단계를 거쳐 조합해야 하는 중국어나, 문장마다 포함된 한자를 번거로운 변환 과정을 거쳐 입력하는 일본어에 비할 바 아니다.



 한글은 ‘음악성’까지도 구현한다. 구전가요를 아악 형태로 담은 『악학궤범』이 그것인데, 정음 문자로 문학(감성)과 음성학(운율)을 함께 아울렀음은 물론 언어학·문학·음성학을 맛깔스럽게 버무린 당대 최고의 통섭학이었다. 인문학·과학·예술 등 다방면을 섭렵하고 서로를 벤치마킹하지 않았다면 『악학궤범』은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 제임스 캐머런, 에릭 슈미트….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너무도 안타깝다.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창조 DNA를 가진 우리 민족이 왜 좀 더 진화하지 못하고 이들에게 밀렸을까. 우리에게는 정말 이런 융복합형 인재들이 없을까. 분명 있을 것이다. 있는데 찾지 못하고 있거나, 싹이 나올 만하면 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가 필요한 인재는 결국 학교가 배출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을 보자. 우리 학생들은 지금 본연의 임무인 ‘진리 탐구를 통한 창조적 행위’는 멀리한 채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출세할까를 궁리 중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나.



 우리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크다. 우리 아이들의 그 좋은 머리를 네다섯 개 중 하나 고르는 요령을 터득하는 데만 쓰게 한 책임, 고시 공부와 취업 준비에만 함몰돼 있는 우리 아이들을 그냥 방치하고 있는 책임, 실험 기자재 하나 제대로 갖추어 주지 못한 책임, 주입식·상명하복식 교육에 길들도록 강요한 책임…. 이루 다 꼽기도 힘들다.



 모든 걸 ‘제로 베이스’에서 생각해 보자.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윽박지르거나 몰아붙이지 말자. 자유분방하면서도 창조적 DNA가 충만한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이들로 하여금 자기가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미치고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게 우리 세대의 임무이고 책임이다.



 세종대왕을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존경하는 위인으로 꼽는 아이들에게 그가 왜 스티브 잡스보다 더 위대한지를 제발 가르쳐 주자. 거기서 그치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 그를 닮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주자.



황창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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