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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개봉박두 ‘극장식 물가관리’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얼마 전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대학생 독자가 이런 문의를 해 왔다. “인플레 대책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대로 하면 될 텐데 정부는 왜 행정력을 동원하나.” 답변하기 참 고약한 질문이다. 이 학생 역시 금리나 환율 같은 거시경제 수단으로 ‘고공폭격’을 하는 게 정답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알면서 왜 묻느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의 궁금증은 ‘교과서의 정답이 왜 현실에선 채용되지 않느냐’는 데서 나온 듯하다.



 답변에 앞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행정부의 완력을 동원한 물가통제는 한국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정부만 무식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도 1970년대엔 노골적인 물가통제를 했다. 예컨대 1970년 미국의 경제안정화법은 요즘 우리 정부의 물가관리보다 더 강압적인 수단을 제공했다. 이 법을 근거로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임금·물가 통제령을 발표했다. 대통령 긴급조치나 마찬가지였다. 1단계로 90일 동안 농산물과 수입품을 제외한 모든 물가와 임금을 동결했다. 2단계에선 정부 주도의 위원회를 설치해 임금과 상품 가격의 기준을 심의했다. 3단계로는 가격의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정해줬다. 전시(戰時) 물가통제와 비슷했다.



 그렇게 해서 닉슨 행정부는 물가를 잡았나? 당연히 못 잡았다. 오일쇼크에다 옛 소련의 흉작에 따른 농산물 가격 폭등이 겹쳐 미국의 인플레는 계속됐다. 그런데도 72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는 “인플레는 거의 끝났다”고 선언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였다. 위원회는 76년에도 똑같은 선언을 되풀이하다 신뢰만 잃고 말았다. 65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인플레는 그렇게 약 15년 동안 이어졌다. 미국의 인플레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폴 볼커가 연방준비제도 의장(79~87)이 돼 고강도 금융긴축에 나서면서였다.



 우리 경제 공무원들, 이런 선례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이미 선택을 해버렸다. 성장을 위해 금리·환율을 동원한 고공폭격은 곤란하다, 대신 보병부대로 최대한 버티겠다는 것이다. 성장을 중시하는 정부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여기에 대고 금리를 올려라, 환율을 정상화시켜라 하며 교과서적인 주문을 아무리 해봤자 소용이 없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아니까 안 하는 거다.



 게다가 행정력을 동원한 물가잡기는 공무원들의 이해관계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이번이 공무원들에겐 좋은 찬스다. 계속 일거리를 만들 수 있으므로 인사권자에게 ‘일하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 ‘경제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검찰’을 자임하고 나선 것도 그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들로선 자신에게 유리한, 합리적 선택을 한 셈이다. 멍석이 쫙 깔렸으니, 덥석 올라섰다는 얘기다.



 경제부처 공무원들, 먹물 먹을 만큼 먹은 분들이다. 이런 식으론 물가 못 잡는다는 거 다 안다. 그래도 부산하게 뛰는 모습을, 그것도 오랫동안 보여줄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다. 그래서 뻔히 아는 길을 애써 둘러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한마디로 드라마틱한 ‘극장식 행정’이다.



 엇방향의 드라마가 동시 상영되고 있다는 것도 구경거리다. 물가관리 시국인데도 대기업이 통 큰 할인을 하면 미운털 박힌다는 거, 얼마나 역설적인가. 값을 낮추는 것 OK다, 그러나 중소상인들이 받는 값보다 낮추진 말라는 거다. ‘정무적 판단’이라는 이름의 역방향 물가관리다. 대-중소기업 상생도 그렇다. 납품가를 현실화하라는 것,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주라는 것 모두 선의에서 나온 권장사항이다. 중소기업의 부담을 대기업이 나눠 지라는 얘기다. 이럴 때 대기업은 어찌 하겠는가. 물가 비상시국에 값을 올리긴 어렵다. 비용을 감수하든, 품질을 낮추든지 해야 한다. 대개는 후자로 기운다. 이거 다 대한민국 경제 공무원들의 노고 덕분에 볼 수 있는 구경거리다.



 마침 이번 주엔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종합대책이 발표된다. 극장식 물가관리, 개봉박두다. 앞서 소개한 대학생 독자는 심오한 궁금증을 거두고, 공무원들의 활약상을 지켜보길 바란다. 경제선임기자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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