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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필수과목으로 하자





1995년 세계화의 역설 - 국사, 세계화 이유로 필수서 선택으로 … 글로벌 지적 경쟁력 추락
2011년 국사 실종 원년 - 근현대 60년 ‘성공의 역사’ 제대로 안 가르쳐 3류 ·자학사관 판쳐



동결(凍結)된 한국 역사. 우리 국사 교육의 현주소다. 1990년대 이래 고교에서 국사는 필수에서 선택으로 그 위상이 내려앉았다. 이제는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은 과목이 됐다. 이념 논쟁까지 겹쳐지며 꽁꽁 얼어붙어 생명력 없는 ‘냉동 국사’로 전락했다. [조문규 기자, 얼음조각가 김정철, 장소 제공=호텔 리츠칼튼 서울]





총체적 파행. 우리 국사 교육의 현주소다. 양과 질,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문제다. 우파는 형식을 해체했고, 좌파는 내용을 파괴했다.



 “역사를 살린다고 얘기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반대로였다.”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한국사)의 토로다. 실제 노태우 정부 이래 한국사 교육의 위상은 지속적으로 추락해 왔다. 초등학교부터 고교 때까지 필수 과목이었으나 김영삼 정부 들어 고1 때까지로 축소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다시 중3 때까지로 줄였다.



 우파가 내세운 명분은 세계화다. 국정 방향을 그리로 조정한 일 자체를 뭐라할 순 없다. 글로벌 시대의 지적 경쟁력이 자기 것을 잘 아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했다. “수학문제 하나 잘 푸는 것과 세계 전체를 꿰뚫는 역사인식 능력 중에 어느 게 더 큰 경쟁력일까”(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라는 지적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사태는 복합적이다. 우리 근현대사는 ‘이념 전쟁’의 진원지다. 대한민국 형성과 발전 과정의 부정적 측면에만 돋보기를 들이댄 것은 좌파였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는 “공동체의 어두운 시기만 회상하며 이래서 나빴다 저래서 나빴다는 것은 구시대적 자학 사관”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지적 3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우리는 지금 대화의 양도 부족하고, 질적 수준도 현저히 낮다. 역사는 공동체의 마음을 잇는 끈이다. 역사의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 내용과 형식 모두 꽁꽁 얼어붙은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고교에서 한국사가 사라질 수도 있게 된 ‘2009년 미래형 교육과정’은 이명박 정부의 작품이다. 2009년 6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가 발표했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10년에서 9년으로 줄이는 게 골자다. 고교의 전 교과목이 선택 과목이 된다는 의미였다.



한국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까진 고1에서라도 필수과목으로 배웠는데, 올부터 중학교까지만 의무다. 고교에선 3년간 한국사를 배우지 않고도 졸업이 가능하게 됐다.



 곽병선(경인여대·한국교육학회장)·홍후조(고려대) 교수 등이 2009 개정교육과정의 실무작업을 했다. 당시 청와대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이 “선진국에 비해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 수가 너무 많다”는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줬다고 한다. 자문회의의 시안을 넘겨받아 확정한 건 교육과학기술부의 몫이었고 안병만 장관-이주호 차관 체제였다. 이들은 공히 “고교 과정을 선택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 학생 스스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조난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선임연구위원)는 뜻에서다.



 이들은 “역사교육이 후퇴하는 건 우리도 원치 않는다”(김숙정 교과부 교육과정기획과장)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사의 필수과목 지정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교육과정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어느 교과나 다 필수로 해달라고 한다. 그걸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주당 수업 시간이 현행 32∼34시간에서 50시간 이상으로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만 전 장관은 “고교를 선택 중심으로 가자는 건 이전 정부부터의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교육계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실제 그 뿌리는 15년 전 김영삼 정부 때의 5·31 교육개혁 조치다. 당시 세계화·정보화·민주화의 물살을 타야 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신설했고 고교를 선택 중심으로 가자는 총론을 잡았다. 이후 교육과정 개편 때 이런 내용이 반영됐다. 국사가 고1 필수과목으로 격하됐고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신설됐다.



 5·31개혁은 청와대와 교육개혁위가 주도했다. 당시 이명현 교육개혁위 상임위원과 박세일 청와대 수석이 주축이었다. “산업화시대엔 빨리 배우고 암기하는 공급자 위주의 교육이 불가피했지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다양성·자유·선택을 중시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5·31 정신”(박세일)을 내걸었다. 교육부는 배제됐다. “그간 교육을 망쳐온 당사자”(교육계 인사)란 인식에서다.



 5·31개혁 주축들은 역사교육에 대한 불신이 깊다. 교과 이기주의로 여긴다. 이명현 당시 위원은 “유신 일당 독재 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쳤다. 한국사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해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필수로 했다”며 “역사를 국사·동양사·서양사로 나누면서 제대로 못 배웠고 국사만 가르치다 보니 전부 바보로 만들었다. 아직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박세일 전 수석도 “필수과목으로 하느냐 여부보다 가르치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옥자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세계화시대를 맞아 ‘국사’라고 하면 ‘쇼비니즘’(Chauvinism·광신적 애국주의)이 연상된다며 ‘한국사’로 이름을 바꾼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국사 교육 자체의 위상을 너무 격하한 게 문제다”고 맞섰다.



 박 전 수석은 99년 ‘교육개혁포럼’이란 연구모임을 꾸렸고 5·31개혁 후속 연구를 했다. 현 정부의 교육과정 개정 주역인 이주호 현 교과부 장관과 홍후조 교수도 연구 멤버였다.



 국사의 격하는 노태우 정부 때도 있었다. 91년 교육과정위가 국사를 사회과군에 포함시키고 선택과목으로 돌리는 시안을 발표했다. 정부기관인 국사편찬위가 긴급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하자 선택과목 부분은 결국 취소했다.



 노태우 정부 때와 5·31 조치와의 결정적 차이는 결국 대통령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교육개혁 의지가 확고했다. 95년 교육자대회에 참석, 교육개혁을 다짐했다. 반면 노태우 대통령은 국사학계가 반발하자 한 발 물러섰다. 교육계에선 “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정부시대 때 국사가 국책 과목으로 격상됐던 게 민주화 이후 역풍을 맞은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특별취재팀=배영대·고정애·천인성·박수련·심서현 기자, 뉴욕·베이징·도쿄 정경민·장세정·박소영 특파원,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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