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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나의 일이요, 술은 휴식’ 아버지 장욱진, 그의 딸이 추억하다





미공개작 포함 70점 모아 ‘20주기 회고전’



20주기 회고전 준비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된 ‘소’는 나무판에 유채로 그린 1953년 작(15X23㎝)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장욱진이 겪은 체험을 추측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마지막 시절에 자꾸 바다에 가자고 하셨어요. 이 드로잉은 제가 몇 번 동해에 모시고 갔던 추억을 그리신 거죠.”



 장경수(65·경운박물관 부관장)씨는 선친을 만난 듯 찬찬히 그림을 살폈다. 화가 장욱진(1917~1990)의 큰 딸로 태어나 숙명에 사로잡힌 야인(野人)으로 살다간 아버지를 40여 년 지켜본 그는 작품마다 서린 기억을 잊지 못하는 듯 했다. 14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막을 올리는 ‘장욱진 20주기 회고전’을 준비한 그는 오랜만에 전시장에 나온 작품이 혈육처럼 반갑다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1957년 작 ‘나무와 새’는 저도 15년 만에 보네요. 개인 소장가들 손에 들어가면 좀처럼 만나기가 힘들어요. ‘가족’ ‘까치’ 등 88년부터 89년까지 말년 들어 그림을 참 많이 그리셨어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무렵이라 남들은 밖으로 나돌 때인데 아버지는 방에 틀어박혀 그리고 또 그리셨죠.”



 죽음을 예감한 듯 타계 두 달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 ‘밤과 노인’(1990)에서 화가는 자신을 속세를 떠나 달과 함께 하늘을 훨훨 주유하는 도인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라 했던 그답다. 장욱진은 나이를 묻는 사람에게 늘 앞의 십 단위는 빼고 답했다고 한다. 쉰여덟이면 “나 이제 여덟 살이야, 여덟 살이면 철이 나나?” 하는 식이었다. 평생을 ‘심플(simple)하게’ 살았고, 직업을 ‘까치 그리는 사람’으로 내세웠던 화가는 “그림은 나의 일이요, 술은 휴식”이라며 조선 선비처럼 유유자적했다.



 지난해 서울대미술관(MoA)에서 기획한 ‘장욱진 전’에 이어 마련된 이번 대규모 회고전은 미공개작을 포함해 70여 점이 나와 장욱진의 그림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2월 11일까지 열리는 ‘연리지, 꽃이 피다’전에 김종영(1915~82), 김환기(1913~74)와 함께 나란히 작품이 걸리니 고인의 그림세계를 20년 만에 제대로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까치·나무·개·소·집·해·달·산·아이·가족 등 화가가 가장 잘 알고 좋아했던 것들을 되풀이그린 그림은 어린아이의 눈과 지극히 까다롭게 세련된 안목 사이를 오가고 있다. ‘소박화가’라 불린 그는 같은 대상과 일상을 반복해 그린 까닭을 생전에 ‘회화적 압축’이라 설명하며 “압축된 게 나와요. 결국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거니까 정직한 거예요. 그래서 자꾸 반복할수록 그림이 좋은 거예요”라고 털어놨다.



 이와 같은 전시와 연구가 가능한 건 화가의 ‘분석적 작품 총서(카탈로그 레조네)’ 덕이다. 장욱진이 제작한 총 720여 점의 유화작품을 모두 사진 자료를 토대로 조사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장욱진 Catalogue Raisonne 유화』(정영목 지음, 도서출판 학고재 펴냄)가 2001년 출간됨으로써 화가는 일단 가짜 그림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일일이 사진을 찍고 이력을 챙겨 기록해둔 부인 이순경(91)씨와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을 꾸려가는 유족 힘이 크다. 장경수씨는 “20주기 전을 준비하며 또 미공개작이 나온 만큼 몇 년 안에 내용을 보완한 전작 도록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월 27일까지. 21일 오후 2시 장경수씨의 특별강의가 열린다. 02-2287-35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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