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송호근 칼럼] 허문도와 미네르바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덕담이 어울릴 새해 벽두에 심각한 얘기를 끄집어내서 독자들께 송구스럽다. ‘미네르바 허위 글’ 처벌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접하면서 꼭 30년 전 발생한 신군부의 ‘언론 대학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0년 전이라면, ‘지혜의 신’ 미네르바 이름을 빌려 금융위기 상황을 종횡무진 요리했던 사이버 의인(義人), 그러나 허위 정보로 금융시장 교란에 한몫했던 이 독학(獨學) 청년은 신군부에 의해 주살되었을 것이다. 언론 정화작전으로 알려진 저 악명 높은 언론 대학살은 기자 출신 권력 핵심이었던 허문도가 주도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그런데 미네르바 박대성은 살아서 재판소를 걸어 나왔다.



 허문도와 미네르바 사이에 30년이 흘렀다. 웬만한 국가라면 다 지키는 이 평범한 원칙, 허위 사실을 유포해도 권력의 개입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의 제1 원칙을 확인하는 데에 30년이 걸렸다는 말이다. 시청 앞 광장에서 인공기를 흔드는 정신 나간 짓이 아니라면 언론·출판의 자유는 개인과 국가가 다 같이 존중해야 할 기본권이다. 그 자신 기자였던 허문도는 신군부에 반기를 들었던 982명의 언론 정화 대상자 명단을 작성했고 그중 711명을 쫓아냈다. 동양방송을 KBS로 통합했고, MBC를 공영화했으며, 연합통신이 탄생했다. 매체와 공론장을 입맛대로 세탁한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대한뉴스처럼, 땡전뉴스가 등장해 빈축을 샀다. 10·26사태 이후 1년 동안 27만 건에 달하는 기사가 검열을 받고 삭제됐다. 삭제된 기사 자리를 메우지 않고 공란으로 발행한 용감한 신문도 있었다.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 군부정권이 자행한 언론 탄압은 정권교체의 단골 메뉴로 등장해서 민주화 시대의 권력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했다. 문민시대를 연 YS는 언론 장학생을 몰래 길렀고, 불굴의 투사 DJ는 언론사 사주를 탈세혐의로 감옥에 보냈다. 21세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노무현 정권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란 그럴듯한 명목의 언론 대책을 발표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해도 기자들이 ‘뭔 말인지 영 알아듣지 못해’ 취해진 응급수술이었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신군부의 언론 학살을 파헤치고 있던 때였다. 취재기자들이 갈 곳이 없어 건물 현관에 라면박스를 깔고 기사를 썼다. 홍보비서관은 정부·언론 관계를 정비하는 사육신이 되고 싶다는 비장한 말을 남겼다. 국민소득 1만5000달러, 민주주의가 무르익을 그때에 허문도 같은 자가 또 나타났던 것이다.



 헌재의 메시지는 미네르바의 죄과를 인터넷 공론장에서 판결하라는 것이다. 타블로 사태 같은 위험천만한 사이버 이지메가 빈발하는 한국의 유별난 누리꾼 문화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유독 정치권만은 ‘마음속의 허문도’를 지우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 허문도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린다. 며칠 전 종결된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그동안 벌어진 여야 간 몸싸움과 설전이 그렇다. 지난해 7월 통과된 미디어법은 신문·방송을 분리했던 ‘허문도 법’과 그 악폐인 방송 독과점을 시정하라는 시대적 소명에 부응한 것이었다. 지난 30년은 언론방송엔 뼈아픈 세월, ‘잃어버린 30년’이었다. 삼성·현대·LG가 굴지의 세계 기업으로 도약하는 동안, 언론방송은 동네 구멍가게였다. 동네광고 수주에 목을 매고 정치 눈칫밥을 먹었다. 그런 현실을 두고 정치권은 신생 방송사가 ‘정치의 푸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후진국형 싸움을 벌였다. 세계 7위 무역대국에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키울 생각은커녕 억제호르몬만 주입했던 이 궁색한 판을 바꾸자는 데에 왜 드잡이와 위헌 소송이 필요했을까.



정권교체만 되면 KBS와 MBC 사장이 누가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국에 공영방송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영국의 BBC가, 미국의 ABC와 CBS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사장이 갈리고 논조를 바꿨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프랑스의 AFP, 로이터와 CNN은 세계시장에 정보를 파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다. 이들이 오보(誤報)를 팔면 주가는 폭락한다. 공영이란 이름으로 채색된 정치·언론의 은근한 유착, 이것이 지금도 여전한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면 시청자들은 언론방송의 독립과 세계시장 진출이란 절박한 과제를 정치권과 대중매체에 요구해야 한다. 언제까지 드라마와 청소년 음악만 팔고 있을 것인가? 중국을 포함해 저 드넓은 아시아시장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데 왜 금융·과학·산업·생활정보와 예술·문화·교양 콘텐트를 팔 생각은 못 하는가? 언론방송엔 정치 논리가 아니라 산업과 공론장 논리가 우선이다. 신규 사업자는 물론 기존의 언론방송사도 허문도 유산을 빨리 벗어던지고 공익과 공영, 글로벌 콘텐트 경쟁에 나서야 한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미네르바를 풀어준 헌재의 취지, 헌법의 정신이 그것을 명하고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