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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문화 파워 ② 소프라노 임선혜





정상엔 늘 정체의 위험 … ‘가곡 한류’새 장 열겠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홍혜경·신영옥·조수미를 잇는 한국 성악계의 글로벌 스타다. 지난 10년, 단아한 목소리로 바로크 음악의 ‘뮤즈’ 이미지를 굳혔다. 앞으로 10년은 이런 고정 이미지를 깨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20일 서울에서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부르는 왈츠가 그 변신의 신호탄이다. [김태성 기자]





모차르트 오페라 ‘가짜 정원사’엔 여성이 셋 나온다. 소프라노 임선혜(34)는 그 중 둘을 혼자 해냈다. 지난해 12월 스페인에서다. “공연 하루 전이었어요. 정원사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가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졌죠. 지휘자가 저에게 둘 다 하라고 했어요.” 원래 맡았던 역은 세르페타. 요염하고 영리하며, 출세를 위해 권력가를 유혹하는 여성이다. 정원사로 위장한 비올란테는 반대다. 순수하고 여리다. 임씨는 스카프 하나로 위기를 넘겼다. 정원사 역을 하다가 세르페타로 바뀔 땐 샛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나와 천연덕스럽게 변신했다. “11월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 작품을 했거든요. 오페라 전막 공연이었고, 스페인에서는 콘서트 형식으로 주요 대목만 부르는 무대였어요. 그래서 다른 역할까지 외우고 있는 게 가능했죠.” 노란 스카프로 오케스트라 남자 단원들까지 놀려가며 연기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끼는 무대를 휘젓고도 남았을 터다.





임씨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후 독일로 떠난 것은 1998년. 그를 세계적 무대에 끌어 올리고 지탱했던 원동력이 바로 ‘끼’다. 또 정반대의 역할도 한 무대에서 맡을 수 있는 ‘가변성’이다. 홍혜경·신영옥·조수미 ‘디바 3인방’ 이후엔 누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임선혜를 기억하는 게 좋다.



 임씨는 99년 깜짝 데뷔했다. 거장 지휘자인 필리페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 c단조 미사에 대타로 출연했다. 대학원(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 과정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이후 리카르도 샤이·켄트 나가노 등 쟁쟁한 지휘자들과 함께 노래했다. 특히 세계 무대의 심장부로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크·고전 시대 음악의 권위자인 지휘자 르네 야콥스의 힘이 컸다. 야콥스는 2005년 임씨를 발탁한 후 지금까지 자신의 중요한 공연에서 주역을 맡긴다. 이번 ‘가짜 정원사’에서 1인 2역을 제안한 이도 야콥스였다.



 바흐·헨델 등의 바로크와 그 이전 시대 음악의 ‘성지(聖地)’라 할만한 스위스 인스부르크 축제에서 임씨는 이미 스타다. 깨끗하고 꾸밈없는 목소리가 이 오래된 음악에 안성맞춤인 덕이다. 작은 체구로 무대 곳곳을 뛰어다니며 가벼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는 ‘종달새’라는 별명을 달고 다닌다. 지난 10여 년, 한국의 종달새는 세계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런데도 새해에 “사서 고생이라 할만한 비상(飛上)을 꿈꾼다”기에 3일 만나 소망을 들었다. 



 - 외국 무대 진출이 벌써 10년이 넘었군요. 이제 자리를 잡았고, 찬사를 받고 있는데 프리마돈나로 어느 정도 편하게 살 수도 있겠죠.



 “세계적 소프라노라 해도 평생 열 편 남짓한 오페라를 완벽하게 소화하면 전성기를 걱정 없이 화려하게 보낼 수도 있어요. 사람마다 목소리의 종류와 성격이 정해져 있는 만큼, 맡을 수 있는 역할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따져보니 저는 지난해에만 일곱 편의 오페라에 처음 도전했더라고요. 이전까지는 한해 평균 서너 편의 오페라를 새로 했는데, 지난해는 유난히 많았어요. 모차르트만 다섯 작품이라 ‘모차르트 완전정복’의 해이기도 했죠. 또, 세계 초연작도 있어요. 바로크 시대의 스페인 작곡가 도메니코 테라데야스의 ‘아르타세르세’였는데, 여기에서는 젊은 남성으로 나오는 ‘바지 역할’이었죠.”



 - 1인2역만 하는 게 아니라 남녀도 오갔네요.



 “목소리가 가벼운 덕이기도 해요. 무대와 작품 욕심 때문이기도 하고요. 물론 좀 더 안전한 길도 있었어요. 세계적으로 흔하게 공연되는 작품인 ‘라트라비아타’ ‘라보엠’ 등만 돌려가며 불러도 걱정 없이 무대에 설 수는 있었겠지만, 제 성격에 그렇게 살지는 못했을 거에요. 오페라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낭만시대 작품만 부르는 가수로 길을 정했다면, 공연이 없는 낮에는 다른 직업을 구했어야 할지도 몰라요. 성격이 그래요. 세계 초연 작품에 출연하자는 제의가 왔을 때도, 참고할 만한 기존의 해석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건 제가 ‘준거’가 될 수 있는 기회잖아요. 그래서 초연작 출연의 충동은 참을 수 없이 강렬했어요.”



 - 지난해가 도전의 해였다면 2011년은 뭘까요.



 “정상에는 늘 정체의 위험이 도사린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바로크 전문 성악가’라는 이미지로 자리했고 원하는 무대에 거의 섰죠. ‘야콥스의 뮤즈’ 같은 찬사도 받았고요. 하지만 이 이미지를 굳히지 않도록 노력할 거에요. 아무리 좋은 이미지라도 길게 보면 장애물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올해에는 새 판을 짤 거에요. 요샌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는 시간만큼이나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기획을 해보는 시간이 길어요. 우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에 붙인 가곡만 모아 부르는 프로젝트로 시작해요. 그리고 바로크에서 300년을 뛰어넘어 20세기 현대 오페라에도 출연합니다.”



 임씨는 특히 올해 매우 뜻 깊은 무대를 꾸민다. 스위스에서 7월 열리는 ‘대지의 노래’ 페스티벌에서 한국 가곡을 부를 작정이다. ‘대지의 노래’는 세계 각국의 대표 성악가가 모여 각자 모국의 가곡을 부르는 축제다. 다른 장르에 비해 ‘내수용’에 그쳤던 한국 가곡의 세계화에 불을 댕길 수 있을지 기대된다. ‘봉선화’ ‘산유화’ ‘진달래꽃’ 등을 부를 예정이다. 사실 그는 전부터 우리 가곡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가곡 한류’네요.



 “제 꿈 중 하나가 한국 가곡 음반을 내는 거에요. 조건이 있는데, 세계적 음반사에서 외국 청중을 위한 음반이어야 해요. 올해 프로젝트는 이 꿈을 위한 첫 걸음이 될 거에요. 다른 직업과 달리 성악가는 음성이 허락할 때까지만 활동할 수 있잖아요. 저는 길게 잡아야 앞으로 15년 갈까요. 물론 그 이후에도 소리는 나오겠지만, 제 인생 최고의 소리는 아닐 거에요. 그 시기까지 순수한 음악만 하고, 노래만 불러온 성악가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때를 위해 미리 새로운 콘텐트와 형식을 만들어놓는 데에 주력하려 해요. 한국 가곡을 세계에 소개하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건 그 때문이기도 해요.”



 - 앞으로 15년이면 지금까지 활동해온 기간과 비슷하네요.



 “네. 가끔은 어디로 더 올라가려고 이렇게 사나 싶을 때도 있어요. 지난해를 통틀어 베를린의 집에 머물렀던 시간이 채 한 달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올라가기 위해 달렸으면 이렇게 못 뛰었어요. 재미있어서 달렸기 때문에 지금껏 온 거에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른 연주자들과 하루 종일 연습하고 연구하고, 밥 먹으면서도 또 음악 얘기 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는 직업이 또 있을까, 아직도 신기해요.”



 - 요새는 한국 성악가들이 유럽 곳곳의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하죠. 한마디 조언을 해준다면요.



 “한국 성악가들의 노래는 대부분 흠잡을 데가 없어요. 잘 배웠고, 가진 재능이 많아요. 하나 아쉬운 것은 마음을 여는 거에요. 한국의 젊은 성악가들은 정해진 틀 안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외국의 음악계에서는 자신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거나,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오페라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나 동료들과 작업할 때 자신을 활짝 열어 보여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 당신처럼 그런 성격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어렵겠죠.



 “유럽 성악가들이 저에게 ‘넌 동양 여자 같지가 않고 꼭 유럽에서 자란 것 같다’라고 하는데, 그래서 더 적응하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한국에 있었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르죠. 하하.”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임선혜=1976년 강원도 철원생.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에서 유학하던 중 지휘자 헤레베헤와 야콥스에게 발탁됐다. 이들의 영향으로 당대의 음악을 그대로 복원해 연주하는 ‘고음악’계의 스타가 됐다. 모차르트 ‘돈조바니’ ‘마술피리’ 등의 오페라 앨범을 내놨다. 2011년 세계적 음반사인 하르모니아 문디와 계약을 맺고 첫 솔로 앨범을 녹음한다. 한국 성악가로는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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