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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결국은 맞아떨어진 근대의 참언들



1951년 5월, 38선을 돌파해 북진하는 화랑부대 장병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했고 10월 1일에는 우리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했다. 그러나 1월에 다시 38선 이남으로 밀렸다가 3월에 다시 돌파하는 등 38선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다. ‘이사’하는 것만 예언한 탓인지, 남북은 경계선만 조금 옮긴 채 여전히 대치하고 있다. [사진 출처=『육군역사사진집』]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수호지’의 시대적 배경이 된 북송(北宋) 휘종(徽宗) 말년에, 수도 개봉부(開封府)의 보록궁(寶菉宮) 요선전(瑤仙殿) 문 기둥에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시 한 수가 나붙었다. “집안의 나무는 좀이 슬어 수명을 다했고(家內木?盡) 남방의 불은 빛을 잃었도다(南方火不明) 길한 사람은 변방의 사막으로 돌아가고(吉人歸塞漠) 서까래 또한 꺾이고 기울었도다(亘木又?傾).” 당대에 글깨나 한다는 사람 누구도 이 요령부득의 시를 해석하지 못했으나, 북송이 망한 뒤에는 누구나 이 시가 예언한 바를 알게 됐다.

 집안의 나무나 남방의 불은 모두 송나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송(宋)이라는 글자가 집 가(家)의 갓머리 안에 나무 목(木)을 넣은 글자이며, 또 송나라는 오행(五行) 중 화덕(火德)을 숭상하여 달리 염송(炎宋)이라고도 했다. 길한 사람(吉人)과 서까래(亘木)는 송나라에 망조가 들게 한 무능한 두 황제 휘종과 흠종의 이름 길(佶)과 환(桓)을 각각 가리켰다. 이 둘은 후일 금나라의 포로가 되어 새북(塞北) 땅에서 인질로 살다가 죽었다.

 우리 근대에는 이처럼 신묘한 예언의 사례는 없으나 비슷한 참언이 유행한 적은 있다. 1894년 여름,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은 동학 농민군이 삼남 지방 각처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던 무렵, 농민들 사이에 “갑오세(甲午歲) 갑오세 을미적(乙未賊) 을미적 병신(丙申) 못 가리”라는 노래가 떠돌았다. 문자대로 풀 수 없는 비문(非文)의 노래였으나 누구나 그 뜻을 알았다. 여기에는 “갑오년에는 성공했으나 을미년에 왜적이 공격할 것이니 병신년 이전에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와 “이왕 난리를 일으켰으니 서울까지 가보자, 미적미적대다가는 병신 되어 못 간다”는 선동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었다. 동학 농민운동은 병신년이 되기 전에 진압됐으니 결과적으로 예언이 맞은 셈이다.

 1949년 겨울에는 “내년은 38선 이사 가는 해”라는 참언이 민간에 떠돌았다. 1950년은 단기 4283년이었는데, 거꾸로 읽으면 3824년이 됐다. 참언대로 1950년 6월부터 1년간, 남북한의 경계선은 낙동강과 압록강 사이에서 여러 차례 옮겨 다녔다.

 참언은 본래 어떤 집단의 불안감이나 염원을 현실의 개연성에 맞추고 글자나 숫자에 빗대 그럴싸하게 꾸민 것이니 공교롭게 맞으면 예언이 되고 틀리면 헛소문이 된다. 2011년은 단기 4344년이자 신묘(辛卯)년이다.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가정을 넘보는 모든 삿되고(邪) 불길한(死) 것들을 신묘(神妙)하게 쫓아내는 한 해가 되리라 예언해본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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